기자명 김가희 기자 (gahee@skkuw.com)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 부족해

성인이 돼도 여전히 불안한 생활에 놓일 수 있어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모든 아동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아동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존재한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은 국내 외국인 아동 중 외국인 등록이 되지 않은 채로 체류하는 18세 미만의 아동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크게 외국에서 살다가 들어온 경우와 국내에서 태어난 경우로 나뉜다. 전자는 외국인 등록이 만료되거나 애초에 미등록으로 입국한 경우다. 국내의 미등록 체류자 부모 아래서 태어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못해도 미등록 이주아동이 된다. 이 경우에 아동의 출생신고도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 외국인 아동의 출생신고는 우리나라가 아닌 본국에서만 가능하지만, 지방 출입국이나 대사관을 통해 출생신고를 해야 해 법무부의 출입국 관리법을 적용받는다. 이 과정에서 미등록 체류자 부모가 본인의 신분이 들킬 것을 걱정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출생신고 대상을 우리나라 국민으로만 한정해 외국인 아동은 필수가 아니라는 점도 작용한다. 법무부의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등록 이주아동은 약 5,000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태어난 미등록 체류자의 자녀는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실제로는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건강은 누가 책임지나
미등록 이주아동은 외국인 등록이 돼 있지 않아도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에 따라 *거주사실증명원만 제출하면 공교육기관에 편‧입학이 가능하다. 이에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안진경 센터장은 “현행법상 미등록 이주아동의 편‧입학은 보장되지만, 간혹 미등록 신분이 노출될 것을 염려해 부모 측에서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공교육기관 편‧입학은 가능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법적 제한이 존재해 아동이 일반적으로 받아야 하는 복지를 전부 누리긴 어렵다. 대표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건강권 침해가 대두된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에 따르면 미등록 외국인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미등록 이주아동 또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건강보험 미가입 시 중증 질환 치료는 물론 간단한 진료도 환자의 비용 부담이 크다. 2019년 경기도가 실시한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아동의 부모 340명 중 절반이 넘는 177명(52.1%)이 자녀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145명(39.3%)이 원인을 비용이라고 응답했다. 안 센터장은 “건강권 침해의 사례로 미등록 상태였던 여성 청소년이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지 못해 NGO 단체가 출산을 지원했던 적도 있다”고 전했다.


성인이 된 미등록 이주아동은 어디로 가는가
유아기부터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받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우리나라 국민과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은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받았기에 비슷한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면 체류 자격 때문에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이들이 비자를 얻어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우선 취업 비자를 취득하거나 대학 진학을 통해 유학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두 비자를 취득하지 못한 고등학교 졸업자는 법무부가 지난해 2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시행 예정인 조건부 체류 자격 부여 방안에 따라 1년 임시 체류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기간 안에 취업 비자나 유학 비자로 변경해야 한다.

취업 비자는 전문취업 비자와 비전문취업 비자로 나뉘지만, 갓 성인이 된 이들은 두 비자 모두 취득하기 어렵다. 전문취업 비자는 취득 요건으로 취업 분야와 관련된 대학 석사 학위 이상을 요구한다. 또한 비전문취업 비자는 외국인이 자신의 국가에서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한 후에 얻을 수 있어 국내에서 나고 자란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유학 비자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대학은 법무부의 조건부 체류 자격 부여 방안에 따라 얻은 일반연수 비자나 고등학교 재학증명서 등 신분 증빙서류가 있으면 진학할 수 있다. 이때 일반연수 등의 비정규학위가 아닌 정규학위과정으로 입학하려면 유학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이때 유학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은행 잔고증명서로 한화 2,000만 원 상당의 재정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며 “입학해도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면 유학 비자 적용이 안 돼 일정 기간 내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전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사회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건강권 등 여러 복지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아동 출생신고의 근거가 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안 센터장은 “국내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관리 체계가 없으면 아동들은 공적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조치도 불가하고, 국적이 없는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어 계속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30일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 법안을 담은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는 내국인 아동 대상이다. 한편 지난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아직 발의 단계라 제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국내에서 성장기를 보낸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한시적 체류가 아닌 체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영국의 경우 체류 자격과 상관없이 생애 첫 10년 동안 90일 이상 영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 외국인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 센터장은 “아동이 특정 나이가 되면 한국 국적을 원하는지 확인한 후 귀화 시험을 치를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있다”며 “다만 정착한 아동의 가족이나 친척이 또 다시 미등록으로 들어와 국내 미등록 이주민이 증가할 것이라는 사회적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거주사실증명원=본인의 현 거주 장소와 거주 기간을 작성하는 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