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헌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다. 물론 필자가 헌법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택한 주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헌법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600개의 법률 혹은 약 5,000개의 법령이 있는데, 헌법은 이들의 성립과 효력을 뒷받침하는 원천이다. 일반법이 국가로부터 만들어져 국민을 규율한다면, 헌법은 그 반대로 국민으로부터 만들어져 국가를 규율한다. 일반법이 국가작용의 산물이라면, 그 국가작용은 바로 헌법의 소산이다.

우리 헌법은 130개 조항에 불과하다. 다른 주요 법들과 비교하면 분량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 행복, 그리고 평등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기대하는 실정화된 요구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헌법이 어떤 권리를 보장하는지, 이를 위해 국가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국민에게 유의미한 일이다. 이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무기들과 존엄한 삶을 위해 제공되는 조건들을 알려주는 까닭이다. 이렇듯 헌법은 결코 법 전문가들의 전유물일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헌법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난 30여 년 동안 개정되지 않은 옛날 법 아닌가.’ 당연하게도, 헌법을 읽는다 해서 당장의 가시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전의 변화가 없다 해서 그 일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헌법을 잘 이해하는 국민이라면 자연스럽게 국가작용이 헌법에 따라 이루어지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쉽고, 이런 관심이 많아질수록 국가가 받는 무언의 압박도 커지게 된다. ‘제대로 하는지 한 번 지켜보자’는 평론가 앞에서, 배우는 연기에 더욱 신경을 쏟기 마련이다.

헌법은 개정하기 어려운 법이고, 우리 헌법이 여러 개헌논의 속에서도 30여 년 동안 변경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 30년 전과 지금의 헌법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 헌법은 30년 전에는 여성의 낙태행위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행위를 처벌해도 된다고 보았으나, 지금은 그러한 처벌이 더 이상 헌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헌법이 형식적으로는 동일해도 실질적으로는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같은 처벌을 긍정하는 헌법과 그렇지 않은 헌법 간에는 인권에 관한 철학이나 인간성에 관한 이해에서 심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어느 법보다도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며, 다양한 해석과 운영에 개방되어 있는 헌법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한다. 헌법의 이런 개방성은 개헌이 아니더라도 헌법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조응하여 실질적으로 변모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 헌법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7년에 탄생했지만, 이 헌법이 그 무렵에 수여받은 의미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헌법에 현재적 의미를 주입해 그것을 당대에 합당한 모습으로 주조하는 것은 결국 당대 국민의 몫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헌법을 읽고 그 의미를 현재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