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너는 언제나 내 전화를 받았지. 정말 언제나 말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참 술을 마시는 중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거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너는 내 전화를 거절한 적이 없었어. 내가 혼자서 외로움을 잘 탄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전화를 망설이고 있을 때면 먼저 “지금 전화 걸까?” 하고 물어오기도 했지. 내가 때로는 두 시간 내내 전화만을 연결한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너는 내 용건 없는 전화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지.

친구들이 내게 수원에 꿀을 발라두기라도 했느냐며 놀렸던 것 기억나? 돈도 없고 요령도 없고, 뭣도 모르던 스무 살에 매주 1호선 급행 지하철을 타고서 한 시간을 달려 너를 찾아갔잖아. 덕분에 나는 언덕이 가파른 인사캠 정문보다 넓고 조용한 자과캠에 익숙했잖아. 네가 수업을 듣는다던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끝내 외우지를 못했지만 네가 살던 기숙사로 향하는 길만큼은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않았지.

사랑하는 B. 그러나 이젠 학교에서 너를 보기가 힘들어졌어. 우리는 종종 연락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않게 됐잖아. 당연하게도 말이야. 그렇지만 뒤늦게 고백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변화하듯이 우리의 관계도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던 때도 있었어. 웃긴 일이지? 이제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아.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함 없는 너’는 분명 존재하겠지? 너와 내가 바뀐 만큼, 꼭 그대로인 부분도 있을 것 아냐. 그랬으면 좋겠다. 너는 글을 쓰는 것만큼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여전히 그래? 만약 그렇다면, 너는 언젠가 건물 입구에 놓인 가판대에서 무심코 신문을 집어 들겠지. 제일 뒷장을 펼쳐 흥미로운 글을 찾다가 이 면을 발견하게 되겠지. 그리곤 내 편지를 읽게 될 거야. 그때 네가 나와 내 글을 알아봤으면 좋겠다. 아니, 아마 그러겠지? 나와 가장 많은 언어를 공유했던 너니까.

안녕, B. 오랜만에 인사할게. 나는 우리가 함께였던 시절의 따뜻함 덕에 지금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어. 그러니 부디 너도 그렇기를 바라. 그러다 우리의 삶이 다시 스무 살 그때처럼 교차하는 순간이 오면 반갑게 안부를 묻고 지루한 전화를 하자. 용건 없는 전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