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예련 기자 (aerong@skkuw.com)

나는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말랑말랑한 문화면이야말로 신문을 열어 본 사람들이 가장 읽고 싶은 지면일 것이라고 생각해 문화부에 지원했다. 이에 한 학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기사에 담으려 노력했다. 

첫 기사인 ‘온라인 선물하기’는 친한 친구의 생일에 선물 대신 보낸 편지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 쿠폰이 아닌 더 좋은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고, 친구는 그에 ‘백 개의 선물보다 훨씬 큰 편지’였다고 답했다. 그 순간 카카오톡에서 무난한 선물을 관례처럼 전송하던 나의 모습이 스쳤다. 

세 번째 기사였던 ‘웨이팅 문화’를 떠올린 것은 버스 터미널 분식집에서였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키오스크로 김밥을 주문했고, 그 앞에 선 한 중년 남성이 키오스크 앞을 서성였다. “이거 어떻게 주문해요?” 바쁘게 김밥을 마는 직원은 그 물음에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나는 그에게 가 주문을 돕고 그 답례로 김밥 몇 개를 받고선, 올라가는 기차에서 그가 겪었을 무안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문화가 온라인으로 옮겨온 지금, 가장 보편적 행위인 식문화에서까지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기자로서 처음 쓰는 이번 기사에서는 ‘온라인 리뷰’를 다뤘다. 역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였지만, 기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지 못해 기사를 완성하는 그 순간까지 참 오래도 헤맸다. 문건을 작성하고 흐름을 수정하는 새벽 내내 내가 참으로 당연한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건 그것을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과 같다. 나는 독자들이 읽고 싶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고자 가장 일상적이고 작은 행동에 주목했다. 작은 행위에만 집중하다 보니, 숲을 볼 수 없었다. 그곳에 모인 각각의 나무를 분해하다 결국 그들이 모두 푸르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된 꼴이었다. 하지만 좋은 기사가 되려면 이를 거시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단순히 현상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 독자에게 필요한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기사를 수정하며 많은 고민 끝에 인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온라인 리뷰를 조망했다. 신문을 넘기는 바로 지금, 내가 쓴 다음 페이지의 문화면이 당신이 읽어야만 하는 기사이기를 바란다. 

허예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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