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응민 기자 (yesmin@skkuw.com)

지금은 당신이 죽기 5초 전이다.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지고 오로지 둔탁한 심장 박동 소리만 당신의 귀를 울린다.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눈앞에는 무엇이 보일까.

흔히 인간이 죽음을 앞두게 되면 주마등을 본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인상 깊던 기억들이 원통형 등(燈)에 그려진 그림처럼 눈앞을 지나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마등은 철저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전개되는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우리에게 타인의 주마등을 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스스로 죽음이자 파괴자가 되었다고 자조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주마등은 어떨까.

영화는 명시적으로 오펜하이머의 삶을 세 가지 디제시스로 분리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정까지의 오펜하이머의 삶, 원자폭탄 투하 이후 매카시즘과 더불어 지탄받게 되는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질긴 악연이 있던 스트로스 제독의 청문회. 이 세 가지 시점은 각기 다른 화면비와 색감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지지만 결국 모두 오펜하이머의 삶 속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영화의 흐름에 올라타게 되면 분리된 시점들이 유기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분명 뛰어난 과학자이자 행정가다. 그가 수많은 지성인과 함께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원자폭탄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역사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업적보다 피로와 고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타국에서 공부하며 느꼈던 지독한 향수, 공산주의와 엮인 그의 주변인들에 대한 불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기억, 원자폭탄이 가져올 인명피해에 대한 죄책감, 전쟁과 정치적 논쟁에 대한 피로. 글로 나열하기 진부할 정도로 수없이 그의 삶에서 이뤄진 분열과 연쇄반응은 결국 그가 더 이상 반짝이는 과학행정가의 눈빛을 가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작은 방 한 칸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이 관심도 주지 않는 그의 보안 등급 승인 청문회에서 낱낱이 파헤쳐져 난도질당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인류에게 새로운 반환점을 제시한 양자역학의 산물에 집중한 영화라기보다 이렇게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느낀 피로와 고뇌를 담담하게 담아낸 영화에 가깝다.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비교적 유복했다고 알려진 오펜하이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일차원적인 독후감을 썼던 방송인 하하가 어쩌면 과학행정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오펜하이머의 삶을 가장 순수하게 바라본 문장을 내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롯한 타인을 기억할 때 어떤 것을 이뤄냈고, 어떠한 모습이 행복했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진정 진찰해야 할 부분은 불행했거나 고통받았던 기억이고 스스로가, 때로는 서로가 그 부분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적어도 오펜하이머처럼 방 한 칸에서 그 기억들이 파헤쳐지지 않고 난도질 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스트로스 제독과 오펜하이머 사이에는 이러한 관심이 부재했고 그 결과 오해와 함께 서로에게 치명적인 아픔과 실패의 흉터를 남기게 됐다. 

양자역학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의견을 고수하며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장면을 예상했던 필자는 비교적 숙연해진 모습으로 영화관을 나서게 됐다. 인류의 크나큰 변혁을 이끌어왔던 자도 보통의 사람과 같이 불안해하고 아파하며 고민하더란 것이다.

결국 <오펜하이머>가 보여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한 사람의 삶. 자, 이제 당신의 주마등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당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이응민 차장
이응민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