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선우 기자 (sunshine6833@skkuw.com)

인터뷰 - 원주민 작가

미술과 대중성의 괴리를 웹툰으로 해소해  

대학생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 돼 

공포 만화에 개그와 작가의 일상이 담긴 잡다한 만화. 원주민(본명 김동현) 작가가 본인의 웹툰 ‘원주민 공포만화’를 소개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대중성을 잡기 위한 작가의 부단한 노력 끝에 탄생한 결과다. 여러 장르를 합쳐 자신만의 웹툰을 만든 원주민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주민 작가. 사진| 엄선우 기자 sunshine6833@
원주민 작가. 사진| 엄선우 기자 sunshine6833@

우리 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고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초등학생 때부터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 교과서나 연습장에 만화를 자주 그렸어요. 학창 시절 친구들이 제 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모습에 행복감을 느껴 제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입시를 위한 미술을 가르치는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진 않았고 형이 다니던 화실에 따라 들어갔어요. 화실은 공방 같은 곳인데, 작가들이 부업으로 자기 작업실을 내놓고 사람들이 같이 모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에요. 운영하시는 작가님은 입시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셨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미대 입시를 준비했는데 성적이 낮으니까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재수할 때는 그림을 아예 안 그리고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8개월 동안 공부만 했어요. 당시 우리 학교 실기 시험은 모델을 앞에 두고 약 3시간 동안 인물화를 그리는 것이었는데, 화실에서 같은 방식으로 인물화를 많이 그려봐서 이에 익숙했어요. 화실에서 그림을 연습하다가 우연히 당시 우리 학교의 입시에 맞게 훈련이 된 거죠.


어떤 대학 생활을 보냈는가.
대학 생활 내내 미술 공부에 몰입했고 그 덕에 전공 수업은 성적이 좋았어요.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기도 하고, 제 전시도 해보고 싶어 다양한 공모전에 수없이 도전했죠. 친구 세 명과 모여서 개인적으로 이대 쪽에 있는 건물에 저희 작품을 건 적도 있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교수님들과 친구들한테 언제든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데 졸업하면 그럴 기회가 적으니 학생 때 무엇이라도 이루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한 실패하더라도 학생이기에 재도전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 부담이 적었어요. 전시 활동을 할 때마다 교수님이나 강사님들이 기특하게 봐주시고 손님들도 데려와 주셨어요. 이렇게 계속하면 대중성을 얻을 기회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어요.

원주민 작가가 대학 시절 그렸던 그림. ⓒ원주민 작가 제공
원주민 작가가 대학 시절 그렸던 그림. ⓒ원주민 작가 제공


대학 생활을 하며 가지고 있던 고민이 있다면.
4학년이 되고 졸업이 다가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학교 수업 강사님 중 한 분이 미술계에서 유명하고 인정받는 분이셨는데,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는 모습을 보고 미술과 대중성간의 괴리를 크게 느꼈어요. 이후 전시회 때의 경험과 더불어 이대로 미술 활동을 계속해봤자 제가 원하는 대중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죠. 고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공부하며 꿈꿨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예술가의 생활이었거든요. 교수님들께서 졸업생 중 미술 원전공을 살리는 학생은 5%도 되지 않는다며 결국에는 학원 선생님이 되거나 부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다고 말씀하신 게 와닿기 시작했어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 영향을 준 일이 있다면.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제가 그린 만화를 돌려보면서 재밌어하던 모습을 보며 그때부터 사람들이 제 작품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은연중에 만화 쪽 진로를 생각하다 우리나라 출판 만화 시장이 잘 안된다는 것을 알고 미술 전공을 택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친구가 작업실에서 옛날 만화였던 ‘키드갱’을 보고 있는 것을 봤어요. 키드갱은 옛날에 연재했던 출판 만화인데, 출판 만화 업계가 쇠퇴하면서 종료됐었거든요. 그런데 웹툰 형식으로 바뀌어 재연재를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웹툰이라는 것을 봤는데 댓글이 몇천 개가 달린 것을 보고 우리나라 만화 업계가 다시 부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는 미술 공부에 집중해 보고 안 되면 웹툰에 도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원래 관심이 있던 진로이기에 나중에 이 진로로 틀자고 생각했을 때도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원주민 공포만화가 개그 및 일상툰의 성격을 지니게 된 과정을 소개해달라.
처음에는 탁구를 소재로 만화를 준비했는데, 소재에 대한 친구의 피드백을 듣고 무엇이 더 접근하기 쉬운 소재일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공포 장르를 시도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저와 제 친구 둘 다 공포 장르를 좋아했고 제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작품도 그리곤 했거든요. 그런데 제 그림 실력에 비해 기존 공포 만화들이 작화가 너무 뛰어나서 평범한 공포 만화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분위기를 뒤엎는 개그식 마무리를 생각해 내며 공포 개그 만화를 기획하게 됐죠. 원래 주인공도 평범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었는데 공포 개그 만화로 선회하면서 등장인물들도 바뀌었어요. 평소 조석 작가님의 ‘마음의 소리’ 웹툰을 즐겨 봤는데 마음의 소리처럼 계속 같은 주인공들이 나오는 *옴니버스 웹툰의 형식을 벤치마킹해서 저랑 제 주변 친구들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공포 만화 중에는 이런 게 없었으니까 신선하겠다 싶었죠. 그중 주인공인 원주민 캐릭터가 제 모습을 본뜬 캐릭터이다 보니 제 일상 속 이야기를 만화 속에 넣기도 해 일상툰 같은 모습도 가지고 있어요.

왼쪽에서부터 원주민 공포만화 포스터, 작중 작가 본인의 캐릭터 원주민이 웹툰을 그리며 고통받고 있는 장면, 알 수 없는 존재가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작중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고 있는 장면. ⓒ 네이버 웹툰 캡처
왼쪽에서부터 원주민 공포만화 포스터, 작중 작가 본인의 캐릭터 원주민이 웹툰을 그리며 고통받고 있는 장면, 알 수 없는 존재가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 작중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고 있는 장면. ⓒ 네이버 웹툰 캡처


웹툰 형식의 그림을 그리는 데 힘든 점은 없었는가.
웹툰은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연속적인 그림이다 보니, 각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그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미술 공부를 할 때는 하나의 그림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하는데 이를 웹툰에 적용하니 정적인 느낌이 많이 났어요. 인물화는 많이 그려봤지만 겁에 질려서 헐레벌떡 달려가는 인물은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죠. 인물을 아무리 잘 그려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마네킹처럼 보이면 몰입감이 떨어져 소용이 없었어요. 도저히 못 그릴 것 같은 동작들은 직접 자세를 취한 뒤 사진을 찍어 따라 그리거나 인터넷의 사진을 참고했어요. 

또한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구도도 다양하게 그리려 노력했어요. 특히나 공포 만화에서는 극적인 표현이 중요하다 보니 다른 존재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나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 등 여러 구도를 구성하는 것에 신경 썼죠.


스토리를 짤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서운 분위기를 형성할 때 사용하는 장면들을 너무 자주 쓰지 않도록 노력해요. 주인공이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는 등의 장면은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무당과 굿을 하는 장면도 많이 사용되죠. 그런데 이것들은 공포 만화에서 빼기 힘든 요소이기도 하기에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최대한 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요. 그리고 빨간 마스크나 홍콩할매 등 고전 소재를 사용할 때는 기존 이야기의 배경이나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인터넷의 짧은 글만 읽고 최대한 상상해서 그려요. 결국 겹치는 소재를 최대한 안 쓰려 노력하고, 또 저만의 방식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봐도 잘 만들었다 싶은 편이 있다면.
트라우마를 주제로 연재했던 ‘트라우마 시리즈’가 있는데 공을 많이 들였던 만큼 스토리가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원주민 공포만화에 개그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런 분위기의 웹툰이었을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트라우마 시리즈는 교훈까지는 아니지만 여운을 주기도 하는데 이 여운을 좋아해 주신 독자들도 많아서 잘 만든 것 같아요.


웹툰을 연재한 지 6년이 넘었는데 힘든 점과 뿌듯한 점이 있다면.
옴니버스 형식이다 보니 계속해서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처음에는 그림 때문에 작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요즘은 아이디어 기획 때문에 오래 걸려요. 그런데 이 점은 옴니버스 형식의 웹툰이 아니어도 오래 연재한 작가들은 다 겪는 일인 것 같아요.

2019년 부천 국제 만화 축제에서 사인회를 했을 때 저를 보러 오신 분들을 보며 뿌듯했어요. 미술을 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인기였고 이게 대중성의 힘이라고 생각했죠.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는 잠깐 그 지루한 시간에 제 웹툰을 재밌게 본다고 생각하면 뿌듯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ㅋㅋㅋㅋㅋ’로 도배된 댓글을 볼 때 기분이 좋아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웹툰은 결국 대중 예술이기에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면 안 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웹툰 작가 준비하시는 분들과 피드백 할 때 대사의 가독성과 관련해 피드백을 드렸더니 불쾌해하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저도 처음 준비할 때 저도 모르게 대사를 문어체로 딱딱하게 썼는데 친구들이 피드백을 해줘서 알았어요. 이후 최대한 일상적인 어투와 단어, 최신 유행어 등을 쓰려고 노력하고 독자분들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웹툰 시장이 끝나기 전까지 웹툰을 계속 연재하고 싶어요. 출판 만화 시장이 끝나고 웹툰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 못 했던 것처럼, 홀로그램 만화가 나오는 등 새로운 형태의 만화가 금방 나올 것 같아 그전까지 최대한 오래 연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리고 작품이 끝날 때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보면서 즐겁고 고마웠다는 말을 들을 만큼 마무리를 잘 짓고 싶어요. 더 큰 바람이 있다면 주 독자층인 초등학생 및 중학생들이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공포 만화나 개그 만화 하면 원주민 작가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웹툰 작가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에 다니며 경험했던 것들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학생 때 연애했던 경험과 알바했던 경험 등 제가 실제 경험한 것들이 있으니까 스토리 짤 때도 수월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지금 하는 경험들은 졸업 이후에도 영향을 주기에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추억을 안고 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나이대에만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즐기면 그것들이 다 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그로테스크=기괴하고 섬뜩한 것 등을 형용하는 말.

◆옴니버스=각 회차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구성되는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