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민 기자 (yumin510@skkuw.com)

액자속의 예술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본 기사는 영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0년만의 복귀작인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했습니다. 국내 영화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베일을 벗은 해당 작품은 전쟁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소년 ‘마히토’의 이야기를 환상적 세계 안에서 풀어냅니다. 마히토와 함께 이세계(異世界)로 들어갈 준비되셨나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주인공 마히토의 모습. ⓒ대원미디어 유튜브 채널 캡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주인공 마히토의 모습. ⓒ대원미디어 유튜브 채널 캡처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들리는 공습경보와 일렁이는 불길은 작품 속 세계가 전시 상황임을 알립니다. 작품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는 일본입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마히토는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심지어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돌로 내려치기까지 합니다. 마히토는 어머니가 죽고 4년 후 이사를 온 어머니의 고향에서 새어머니 나츠코를 만나게 됩니다.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친절히 대해주지만 마히토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사실 너의 엄마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말을 거는 수상한 왜가리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숲속의 거대한 탑, 불길에 휩싸인 어머니가 나오는 꿈이 마히토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그러던 마히토는 우연히 어머니가 죽기 전 자신에게 남긴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책 속에는 생전 어머니의 필체로 ‘마히토에게’라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1937년 출판된 이 소설은 일본의 언론인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에 영감을 받아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제목 역시 소설에서 차용했죠. 감독은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배선에서 ‘앗’하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15세 중학생 코페르와 그의 멘토인 외삼촌이 사랑과 우정, 생명의 소중함 같은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코페르는 자신의 노트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깁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친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머지않아 틀림없이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어요.” 현재 일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 소설은 전쟁 반대를 암시하는 이 구절 때문에 출판 당시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는데요. 자라나는 일본의 아이들에게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하는 소설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도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yes24 캡처
도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yes24 캡처

마히토도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에서 이러한 소설가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후 마히토는 자신을 괴롭혔던 왜가리를 따라 갑자기 사라진 나츠코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왜가리의 안내로 도착한 이세계에서는 앵무새들이 말을 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새로운 공간으로 떨어지는 등 온통 낯설고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히토는 환상의 세계 속에서 나츠코를 찾아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했던 마히토는 이 모험의 과정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듯합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출판된 지 80년이 넘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관통하는 평화를 향한 바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이며, 열전이 끊이지 않는 지금의 지구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일제강점기라는 것과 마히토의 아버지가 군수 공장의 공장장이라는 점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결말 역시 논쟁적일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미래 세대가 전쟁 없는 평화를 이룩하기를 바랐던 약 80년 전 소설가의 마음은, 변하지 않은 채 지금의 우리에게 다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