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위상 기자 (wisang03@skkuw.com)

보더리스적인 Z세대가 J-웨이브 이끌어

맥락 고려 않는 무비판적 수용은 경계해야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지금, 한류의 근원지인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놀랍게도 한국은 일본 문화 열풍이 한창이다. 영화,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관련 콘텐츠가 흥행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최근 국내에 넘실대는 J-웨이브(일본 문화 열풍) 현상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강하게 불어닥친 일본 문화 열풍, J-웨이브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 ⓒ이마세 인스타그램 캡처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 ⓒ이마세 인스타그램 캡처

바야흐로 일본 문화 전성시대다. 이제 거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본 노래가 들린다. 일본 포스터로 벽면을 도배한 일본풍 식당과 선술집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신민성(행정 18) 학우는 “요즘 일본 관련 제품과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편”이라며 “일식집에도 빈번하게 방문하는 등 일상 전반에서 일본 문화를 접한다”고 말했다. J-웨이브 현상은 단지 일본을 여행하거나 일본산 제품을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 소설 베스트셀러 상위 5개 중 4개의 작품이 일본 소설이었으며 일본의 주류 주종인 하이볼이 인기를 끌며 산토리 가쿠빈 등의 일본 위스키 제품 품절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 문화는 현재 다양한 경로로 우리 생활에 퍼지고 있다.

열풍을 이끄는 주역, 애니메이션과 J-POP
J-웨이브 현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애니메이션과 J-POP이다. 올해 초에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각각 관객 555만 명과 476만 명을 동원하며 국내에서 개봉한 역대 일본 영화 중 흥행 1, 2위에 등극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마세의 노래 ‘NIGHT DANCER’는 J-POP 최초로 국내 음원 플랫폼인 멜론의 톱100 차트에 진입했고, 최고 순위 1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중은 두 분야의 어떤 매력에 열광한 것일까. 일본 애니메이션은 삶의 모든 현상을 폭넓게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슬램덩크’나 ‘하이큐’도 대중적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를 소재로 한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절망을 통한 성장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세밀한 묘사로 표현한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가 배경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재난으로 절망스러운 고통을 겪지만 결국 극복하는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영화의 메시지에 감동한다. 신 학우는 “사회적 재난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재난의 아픔을 극복하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CGV 홈페이지 캡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CGV 홈페이지 캡처

한편 J-POP은 K-POP과 차별화된 정서로 인기를 끌었다. 듣기 편한 멜로디와 섬세한 감성의 가사로 구성된 J-POP은 복잡한 세계관과 댄스곡 위주로 이뤄진 대부분의 K-POP과는 다른 매력으로 대중의 공감을 샀다. 권명오(사학 18) 학우는 “최근 일본 싱어송라이터인 아이묭의 노래를 즐겨듣는데 국내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감성이 담겨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답했다. 또한 J-POP은 애니메이션과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이루기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자연스레 작품의 OST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이다. 그 예로 TV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의 OST인 ‘KICK BACK’은 한국 유튜브 뮤직에서 인기 음악 순위 5위를 차지했다. 국민대 일본학과 박선영 교수는 “일본 문화는 세심한 내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해 이국적인 신선함을 주는데 특히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여서 그러한 매력이 극대화된다”며 “앞으로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J-POP의 상승효과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마세의 노래 ‘NIGHT DANCER. ⓒ이마세 인스타그램 캡처
이마세의 노래 ‘NIGHT DANCER. ⓒ이마세 인스타그램 캡처

경계를 허무는 세대가 20여 년 만에 다시 열풍을 이끌다
사실 J-웨이브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왜색이라고 폄하되던 일본 문화는 1998년 이후 전면 개방됐다. 이 당시 일본 최신 유행을 받아들이는 1차 J-웨이브 현상이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일본의 유명 락밴드 엑스 재팬의 곡을 즐겨 듣거나 일본 인기 아이돌 기무라 타쿠야의 패션을 따라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J-웨이브는 국내 Z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났다. 주요한 원인은 세대적 특징이다. 우리나라 Z세대는 일본 문화 개방 이후 성장해 어린 시절부터 포켓몬스터와 슈퍼마리오 등의 일본 콘텐츠를 접했다. 우리 학교 일본학연계전공 박이진 교수는 “1970년대에 태어난 X세대와 달리 자유롭게 일본 문화를 경험하며 성장한 국내 Z세대의 특성이 현재 J-웨이브의 원인 중 하나”라고 답했다. 또한 타국의 문화와 역사를 별개로 인식하는 Z세대의 보더리스(borderless)한 성향 역시 J-웨이브 현상의 원인이다. 문화와 역사를 연결 짓지 않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만 소비하는 유연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김용현(미디어 18) 학우는 “일본의 과거사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유튜브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채널의 마츠다 부장 같은 콘텐츠는 취향에 맞아 자주 시청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20, 30대 2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일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0%가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이유에 대해 역사 문제와 별개로 일본 문화에 대한 악감정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일본 문화 향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
한편 J-웨이브 현상과 관련해 일본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문화에는 창작자의 역사의식과 가치관 등이 드러나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수용할 때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선영 교수는 “외국 문화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공동체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치 않고 행동하면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일본풍 주점의 간판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식민 통치를 위해 내세웠던 ‘내선일체’ 포스터와 유사해 비판받기도 했다. 또한 한국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로서 전통 한옥이 밀집한 경주 황리단길에는 최근 일본어 간판만 단 식당과 일본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셀프 사진관이 많이 생기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이 경주, 나아가 국내 관광지만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하되 적절한 방향으로 수용하는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박선영 교수는 “경주처럼 한국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광지는 상인들이 자체적인 자치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의 4차 한류, 양국 문화 교류의 장으로서 발전할 기회
국내의 J-웨이브 현상처럼 일본 역시 Z세대를 중심으로 4차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4차 한류는 드라마 ‘겨울연가’ 같은 대중문화를 주로 소비했던 과거와 달리 음식, 패션 등 일상 전반의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현상이다. 집에서 한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한국 스타일 옷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는 ‘도한놀이’가 유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4차 한류의 예시다. 4차 한류 또한 세대적 특징이 주요 원인이다. 이전 한류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수입했지만 4차 한류는 일본 Z세대가 자발적으로 한국 문화를 수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앞으로의 한일 양국 간 문화교류가 기존보다 자유롭고 긍정적인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지난해 일본인 TOPIK(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는 4만 명에 육박했다. 국내 대학의 일본인 유학생 수 또한 5,733명으로 200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시 또한 올해 6월 도쿄에서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재현한 도한놀이 콘셉트의 ‘2023 서울 에디션 인 도쿄’ 행사를 개최했다. 문화는 국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러한 움직임은 상호 국가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나아가 양국 간 문화교류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이진 교수는 “현재 한일 간 교류가 활발한 만큼 한일관계의 주요 갈등 원인인 역사 인식에 대해 한국과 일본 대중들이 함께 논의하는 문화교류 행사 등을 적극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며 “이 역시 문화교류의 일부이며, 앞으로 이런 기획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답했다.

‘2023 서울 에디션 인 도쿄’ 행사. ⓒ서울 관광재단 홈페이지 캡처
‘2023 서울 에디션 인 도쿄’ 행사. ⓒ서울 관광재단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