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선교 편집장 (songsong@skkuw.com)

한 여자가 남성으로 위장한다. 그리고 다른 한 여자는 그 여자에게 속아 재혼을 결심한다. 성별을 속이는 데에 성공한 여자는 상대가 임신했다고 속이는 데에도 성공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상대 여자의 주변인과 가족에게 투자 사기를 친다. 추정되는 피해액은 최소 십억 단위가 넘어간다. 상대 여자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상은 그렇게 좀먹혔다.

최근에 실제로 일어났던 이 이야기는 명백한 혼인빙자 사기다. 그리고 혼인빙자 사기는 명백히 비극이다. 결혼을 결심할 만큼의 사랑이 배신당하는 비극, 혹은 한평생 모아온 돈을 잃는 비극일 수도 있다. 이 비극은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전청조 사건’이다.

혼인빙자 사기가 비극이라는 것이 명백하지마는, 전청조 사건이 비극이라고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중은 도리어 이 사건을 희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뻔뻔하고 허술한 사기 수법들에 대중은 재미를 느낀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언론도 무분별하게 사건의 우스운 측면만을 부각한다. 임신 사실 기만에 관해 범죄성을 보도하기보다는 성관계를 어떻게 했는지, 고환 이식 수술은 실제로 가능한지 등의 선정적인 내용을 보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I am 신뢰에요’라며 어설프게 영어를 사용했던 피의자 전청조의 과거 메신저 대화 내용은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현실을 비극으로 바꾼 ‘사기극’이 아닌,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단순히 재미를 주는 ‘예능’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최근 몇 년간 세상은 비현실적인 경험을 해왔다. 가상화폐로 일확천금을 얻는 이들을 봤고, 가만히만 있어도 집값은 몇억씩 치솟았다. 전염병 하나로 일상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칼부림으로 삶이 덧없이 끝나는 것도 봤다. 성취보다는 쾌락이, 노력보다는 운이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만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는 비판적 사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전청조 사건도 사람들에게는 비판적 사고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현실성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이는 단순한 ‘예능’으로만 여겨도 되는 사건이었다.

최근 한쪽 정당은 총선을 앞두고 비현실성을 앞세운 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포시 혹은 다른 인접 도시들을 서울특별시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도시가 갑자기 ‘서울특별시’가 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집값이 수억은 뛸 것이다. 이에 인접 도시의 사람들은 김포시보다는 자신의 지역이 서울시 편입에 더 적합하다고 앞다퉈 말하고 있다. 비현실적 쾌락이 걸린 이 논의는 결국 일종의 경연 ‘예능’이 됐다. 대중은 정책의 문제에서마저도 비현실성을 좇으며 포퓰리즘의 배경을 마련해주고 있다. 하지만 대중은 모든 의제에서 그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정책에 관해서만큼은 현실감을 가져야 한다. 전청조 사건에서 그랬듯, ‘예능’의 이면에 ‘사기극’이 있지는 않을지, 더 비판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국가적 문제를 전청조 사건 보듯이 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송선교 편집장.
송선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