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규빈 기자 (kyubin@skkuw.com)

흡수·방출하는 빛의 파장대를 조절해 양자점의 색 변환 가능해

소자의 안정성 유지 및 친환경 소재 사용 등 과제 남아있어

지난달 4일, 2023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 발표됐다. 나노 기술의 근간이 된 ‘양자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킨 3명의 과학자 알렉세이 에키모프, 루이스 브루스, 모운지 바웬디가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양자점이 무엇이길래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가져다줄 수 있었을까? 나노 기술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양자점에 대해 알아보자.

2023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 양자점
양자점은 나노미터(이하 nm) 수준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를 말한다. 1nm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매우 작은 크기다. 과거 과학계에서는 물질의 크기가 변해도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양자점은 이러한 상식을 뒤엎었다. nm 수준으로 작은 입자인 양자점은 크기에 따라 전기적·광학적 성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크기에 따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빛의 색이 다른 것이 양자점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특정한 색의 빛을 내기 위해 각각의 색을 띠는 물질을 찾아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양자점은 입자 크기만 조절해도 다양한 색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자점은 1980년대 초 알렉세이 에키모프와 루이스 브루스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알렉세이 에키모프는 투명한 유리에 철, 구리 등 금속 산화물을 넣어 고온으로 녹인 스테인드글라스 입자의 크기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이 변하는 양자점의 특징을 발견했다. 이어 루이스 브루스는 비눗물 속에서 균일하게 퍼져있던 입자 크기가 바뀌면서 빛의 색이 바뀌는 양자점의 특징을 정립했다. 모운지 바웬디는 실질적인 양자점 합성법을 고안했다. 어떤 물질을 균일한 크기의 반도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로 가열했다가 냉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물을 활용한 과거의 양자점 합성 기술은 100℃ 이상에서 기화하는 물의 성질로 인해 높은 온도에서 이뤄지기 어려웠다. 균일한 크기의 양자점을 만들지 못해 의도한 색을 그대로 방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모운지 바웬디는 새로운 양자점 합성법인 고온 주입법을 고안했다. 고온 주입법은 물 대신 300℃ 이상의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계면활성제를 이용해 균일한 크기의 양자점 합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이 30~40년 전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양자점은 최근 △디스플레이 △의료기기 △태양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며 일상생활과 산업에 활용되는 나노 기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어떤 구조길래?
일반적인 반도체의 구조를 먼저 알면 양자점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는 수많은 원자가 결합해 있는 고체다. 일반적으로 원자는 중앙의 원자핵과 일정한 궤도로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광운대 전자공학과 이현호 교수는 “2개의 원자가 결합하면 원자끼리 전기적으로 영향을 주며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궤도가 2개로 미세하게 나뉜다”고 설명했다. 만약 수많은 원자가 결합하면 궤도의 분리가 무수히 증가해 전자의 궤도가 빼곡하게 분포하는 연속적인 띠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띠 형태를 에너지 밴드라 하며 에너지 밴드 중 상단의 에너지 밴드를 전도대, 하단의 에너지 밴드를 가전자대라고 한다. 두 밴드 사이에는 어떠한 전자도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인 밴드갭이 생긴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가전자대에 위치하며 외부에서 에너지가 가해지면 그 에너지를 흡수하며 전도대로 이동한다. 이때 전자는 에너지와 함께 빛의 파장도 흡수한다. 에너지의 크기와 파장의 길이는 반비례하므로 전자가 크기가 큰 에너지를 흡수하면 짧은 파장대의 빛을 흡수하고, 크기가 작은 에너지를 흡수하면 긴 파장대의 빛을 흡수한다. 반대로 전자가 에너지를 방출하며 가전자대로 떨어질 때도 같은 원리로 빛의 파장을 방출한다. 파장대의 길이가 짧을수록 푸른빛을, 길수록 붉은빛을 띠므로 에너지의 크기에 따라 방출하는 빛의 색이 달라진다. 이때 에너지의 크기는 전자가 가전자대와 전도대 사이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이 필요하다. 따라서 두 밴드 사이의 거리인 밴드갭의 크기만큼 전자에 가해지는 에너지의 크기가 달라진다. 즉 밴드갭의 크기에 따라 전자가 방출하는 빛의 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전자의 궤도가 분리되며 에너지 밴드가 형성되는 모습. ⓒ 『2024 수능특강 물리 Ⅰ』  캡처
전자의 궤도가 분리되며 에너지 밴드가 형성되는 모습. ⓒ 『2024 수능특강 물리 Ⅰ』 캡처

 

양자 구속 효과로 양자점의 색을 결정하다
양자점은 어떻게 크기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이는 nm 수준의 작은 반도체 입자에서 나타나는 양자 구속 효과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수십 nm 범위에 전자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갖는 기본 궤도인 ‘보어 반지름’이 형성돼 있다. 즉 보어 반지름은 전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최소의 크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물질을 보어 반지름보다 작은 nm 단위로 만들면 이론상 전자가 보어 반지름까지 나아가 궤도를 돌아야 하는 우리가 nm 수준으로 설정한 영역 안에 갇히는 상황이 연출된다”며 “이를 양자 구속 효과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학교 에너지과학과 임재훈 교수는 “전자는 입자뿐 아니라 파장의 성격도 지닌다”며 “반도체의 크기가 파장의 길이 정도로 작아지면 제한된 공간 내에 파장이 존재해야 하므로 파장이 짧아지며 에너지가 커진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밴드갭은 커지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양자점의 반지름 크기를 1~1.5nm 수준으로 작게 만들면 밴드갭이 커져 짧은 파장대의 푸른빛을, 3.5nm 정도로 비교적 크게 만들면 밴드갭이 작아 긴 파장대의 붉은빛을 방출한다. 양자 구속 효과로 양자점의 크기를 조절하면 원하는 색의 빛을 방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양자점의 크기에 따른 밴드갭 크기. ⓒ 「Nanostructured transparent solutions for UV-shielding: Recent developments and future challenge」 캡처
양자점의 크기에 따른 밴드갭 크기. ⓒ 「Nanostructured transparent solutions for UV-shielding: Recent developments and future challenge」 캡처


무궁무진한 양자점의 활용 가능성
양자점은 양자역학의 기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원리를 현실에서 구현해 냈을 뿐 아니라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3인의 과학자에게 노벨 화학상을 안겨줄 수 있었다. 임 교수는 “크기에 따라 광학적 성질이 변한다는 양자점의 독특한 특성은 활발히 응용될 수 있다”며 “실제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양자점이 상용화됐다”고 전했다. 양자점은 의료 기술 분야에도 큰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환자와 병이 진행된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는 암 진단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례로 대장암의 경우 대장 내시경을 통해 맨눈으로 진단 후 개별 조직마다 검사를 진행해야 암을 판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파장을 갖는 양자점을 이용하면 각기 다른 항원을 갖는 대장암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빛을 흡수하는 특성도 뛰어나다는 특성으로 인해 양자점은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 기반의 기존 태양전지는 태양이 보내는 250~2,500nm의 파장 중 500~1,000nm의 빛만 활용할 수 있었다. 파장이 1,000nm가 넘는 빛은 태양전지를 통과해 버리고 500nm 이하의 빛은 흡수가 되긴 하지만 열로 전환돼 날아가 버리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양자점을 이용한 태양전지는 입자 크기를 조절하며 단파장에서부터 장파장에 이르는 태양광을 흡수할 수 있다. 태양 스펙트럼의 전 영역을 활용해 에너지의 손실을 줄이며 최종 전력 생산량을 매우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임 교수는 “현재 양자점은 오래 사용하면 과도한 빛이나 열에 의해 전기적으로 과부하 상태가 된다”며 “전기적 과부하의 최소화를 위해 양자점 내부 구조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양자점의 과제”라고 전했다. 이어 “초기에 연구된 양자점에는 중금속 소재가 사용됐는데 친환경 소재로 전환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계면활성제=물에 녹기 쉬운 친수성과 기름에 녹기 쉬운 소수성 부분을 가지고 있는 화합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