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선영 기자 (sun00nus@skkuw.com)

Sportlight - 이준혁 체스 선수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

한국 체스를 발전시키는 선수가 되고 싶어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체스가 12년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 정식 *마인드스포츠 종목으로 등장했다.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 총 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었던 이번 체스 경기에 우리 학교 이준혁(철학 18) 학우가 단체전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이 학우는 국내 두 명뿐인 인터내셔널 마스터(이하 IM)로 현재 국내 체스 랭킹 1위다. 참가국 13개국 가운데 랭킹 11위로 시작했던 한국 대표팀은 최종 11위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소감과 함께 치열하고도 즐거운 체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이 학우를 만났다.

체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체스의 매력에 관해 설명해달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께 장기를 배웠었다. 친구들과도 장기를 두고 싶었는데 애들이 장기는 모르고 체스만 둘 줄 알더라. 그래서 5학년 때 체스 규칙에 대해 배우게 됐고, 하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하게 됐다. 

체스는 수학이고 예술이고 스포츠라는 말이 있다. 계산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수학처럼 칼같이 계산해야 하고, 정말 멋진 수는 예술작품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체스는 수학이고, 예술이다. 또 길게는 5~6시간 동안 진행되는 체스 경기에 오랜 시간 집중하려면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스포츠이기도 하다. 

현재 체스 등급 중 IM이다. 그랜드 마스터(이하 GM) 등급 다음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데, GM 등급의 선수를 상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인지 궁금하다.

체스에는 “Play the board, not the opponent”라는 말이 있다. 경기 상대가 아니라 체스판과 게임하라는 이 말처럼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너무 강한 선수면 괜히 비관적으로 상황을 보게 된다. 반대로 나보다 약한 상대일 때는 경기 중에 마음을 놓거나 방심할 수 있어서 결국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아시안게임에서 GM 등급의 선수들과 경기한 소감은.
아시안게임에서 만났던 선수들은 지금까지 상대한 선수 중에 가장 강한 선수들이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선수들이 내 앞에 앉아 있으니 믿기 힘들 정도였고, 또 그만큼 많이 배우기도 했다. 나라면 오래 고민해야 생각해낼 수들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빠르게 둬버리니까 시간이 없어지더라.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GM 등급의 구케시 디 선수와 파햄 마그수들루 선수다. 구케시 디 선수와의 경기는 그 내용 때문에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경기할 때 구케시 디 선수가 객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수를 뒀는데 내가 그걸 놓쳤고 결국 졌다. 끝나고 나서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마그수들루 선수의 경우 평소에 그 선수 플레이를 좋아하고 또 본받고 싶어 했다. 경기가 끝나고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당신이라고 말했더니 알고 있다고 답하더라. 경기 전에 상대 선수의 기보를 분석하면서 경기를 준비하는데, 그때 내 기보를 보면서 자기와 비슷하다는 걸 안 거다. 그때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GM이 되고 싶고, 한국 체스를 발전시키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국내에서 가장 잘하는 체스 선수가 피데 마스터였어서 쉽게 IM이나 GM이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GM이 된다면 새로 체스를 시작하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좀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한국 체스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리고 싶다. 다음 목표 중 하나는 내년 체스 올림피아드에서 50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팬이나 지금 막 체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제 경기를 챙겨봐 주시는 팬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그런 분들의 존재를 느낄 때마다 좀 더 잘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지금 꿈을 키우고 있는 어린 체스 선수들에게는 체스를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진 | 박선영 기자 sun00nus@
사진 | 박선영 기자 sun00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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