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위상 기자 (wisang03@skkuw.com)

대중성과 저작권 측면에서 활용성이 높아

국악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띠기도 해 

당황스러운 장면에서 ‘띠로리’로 시작하는 멜로디, 고등학교 시절 영어 듣기 시험에서 들었던 배경음악을 생각해 보자. 어렵지 않게 그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음악들은 각각 바흐와 보케리니가 작곡한 ‘토카타와 푸가’와 ‘미뉴에트 E장조’라는 클래식 멜로디다. 이렇게 우리 삶 속에서 친근하게 자리 잡은 클래식 음악의 가치와 활용성을 알아보자.

세계 공통의 문화유산, 클래식 음악
클래식 음악은 방대한 범위의 음악 장르로, 넓은 의미에서는 장르나 연대 구분 없는 서양의 전통 음악 전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에서의 클래식 음악은 17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했던 서양의 고전음악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음악의 아버지로 알려진 바흐를 비롯한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가와 그들의 음악이 포함된다. 클래식 음악의 범주는 크게 트럼펫, 바이올린 등의 여러 악기로만 연주하는 기악곡과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나뉜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은 그 전통성과 가치에 따라 국경을 넘어 세계가 공유하는 인류의 유산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이념이 담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경우 2001년에 그 악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가사가 있는 대중가요는 언어의 제약이 있지만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의 경우 언어의 제약이 없어 멜로디만으로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현대에는 문화의 발전으로 국가별 취향과 특색이 강조돼 전 세계 공통의 문화가 등장하기 어렵다”며 “그렇기에 고전 문학과 같이 국경 구분 없이 전 인류 공통의 전통 유산으로 자리 잡은 클래식 음악은 큰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 대중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재료
300년 전 작곡된 클래식 음악은 현재까지도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자동차 후진음으로 유명하며 슈베르트의 ‘송어’는 세탁기 종료음으로 사용된다. 또한 지난해 3월 발매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해 큰 화제가 됐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클래식 음악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긴 세월 동안 계속 연주됐기에 인지도가 높아 대중성 확보에 유리하다. 정 평론가는 “기존의 대중가요를 샘플링 할 시 대중이 원곡을 몰라 성과를 거두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반면 클래식 음악의 경우 멜로디가 널리 알려졌기에 매력적인 샘플링 재료”라고 전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이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활용해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블랙핑크의 ‘Shut Down’은 화려한 기교로 유명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속 강렬한 멜로디를 샘플링했다. 강용희(경제 20) 학우는 “평소 블랙핑크의 무대를 보며 고급스럽고 거친 이미지를 느꼈다”며 “라 캄파넬라의 화려한 멜로디가 기존의 블랙핑크 이미지와 잘 맞았다”고 말했다. 대중가요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저작권 역시 클래식 음악의 활용도를 높인다. 저작권법에 의해 음악의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보호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 전에 작곡됐기에 모두 저작권이 말소된 상태다. 따라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에 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소수의 음악에서 대중의 음악으로
하지만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재 클래식 음악은 다수의 대중에게 엘리트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민성(행정 18) 학우는 “SNS에 ‘상황별 클래식 음악 추천’과 같은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은 격식을 차리고 즐기는 고급 취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대중성 확보를 위한 노력에 힘쓰고 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은 공연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클래식 음악 OTT인 ‘디지털 콘서트홀’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 또한 이러한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의 다양화로 기존 클래식 음악의 틀을 깨는 노력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영화 속 OST를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필름 콘서트’가 있다. 해당 공연에서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인기 영화 속 유명한 곡들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는 오케스트라가 기존에 고수했던 클래식 음악 연주에서 벗어나는 시도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2023 서울 앙코르’는 올해 상반기 클래식 공연에서 예매 랭킹 1위에 올랐고 특히 20대 관객의 예매율이 40%대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유튜브 등의 영상 플랫폼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클래식 음악 콘텐츠도 등장했다. 클래식 음악 유튜브 채널 ‘또모’의 경우 ‘세계 탑 피아니스트와 원격 피아노로 교수님을 속여봤습니다’ 같은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예능 콘텐츠를 제작한다. 해당 영상은 1,40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은 단순히 공연장에서 연주를 관람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변모했다. 이에 대해 정 평론가는 “필름 콘서트나 클래식 음악과 예능을 결합한 콘텐츠는 대중에게 클래식 음악의 문법을 쉽게 소개할 좋은 기회”라며 “새로운 팬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콘텐츠와 같은 중간 다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러한 변화로 최근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은 20~30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2021년 클래식 음악 공연 예매자 중 20~30대 비율은 56.3%로 전체 예매자의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젊은 세대의 유입으로 클래식 음악 팬덤 문화는 기존 아이돌 팬덤과 유사한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콩쿠르와 그에 버금가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 등 국내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은 팬덤 문화를 더욱 활성화했다. 양윤아(미디어 19) 학우는 “우연히 유튜브에 업로드된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승 연주를 본 뒤 팬이 돼 매일 플레이리스트를 청취하고 굿즈를 얻기 위해 음반을 구매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1인 2부로 판매를 제한한 임윤찬 공연의 프로그램북과 음반은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품절됐다.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2023 서울 앙코르 포스터. ⓒ롯데 콘서트홀 홈페이지 캡처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2023 서울 앙코르 포스터. ⓒ롯데 콘서트홀 홈페이지 캡처
또모 유튜브 썸네일. ⓒ또모 유튜브 채널 캡처
또모 유튜브 썸네일. ⓒ또모 유튜브 채널 캡처

 


퓨전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다양화를 추구하다
한편 국내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활용해 퓨전음악을 창작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국악 고유의 가락을 접목해 색다른 현대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국내 클래식 음악의 카테고리를 넓혀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음악학과 오희숙 교수는 “서양과 한국의 악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한국 현대음악은 동양과 서양음악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의미 있는 문화현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두 음악의 퓨전은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서양 현지에서의 연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주독일한국문화원은 독일 베를린에서 국내 작곡가들의 한국 현대음악을 알리는 ‘한국창작음악페스티벌’을 개최했으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현지 기관과 협력해 체코에서 서양 관현악과 국악의 전통 운율을 합친 곡 ‘북’을 연주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목포대 음악공연기획과 신지수 교수는 “문화권을 초월하는 악기 편성과 음악 기법을 사용하는 클래식 음악의 연주형태가 늘어날 것”이라며 “국악과 서양음악, 나아가 세계의 다양한 음악이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클래식 음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샘플링 = 기존 음원의 일부분만을 하나의 요소로 활용하여 작곡하는 기법

한국창작음악페스티벌 포스터. ⓒ주독일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캡처
한국창작음악페스티벌 포스터. ⓒ주독일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