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다솔 수습기자 (webmaster@skkuw.com)

조선시대 유소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청년들의 공론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 필요해

‘전하 들리십니까, 궁 너머 작은 노래가.’ 조선시대 전국 각지의 유생들은 뜻을 모아 궁궐의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600년이 흐른 현재, 이를 재해석해 계승한 활동이 있다. 역사 앞에 발 딛고 선 청년들이 개방한 언로, 유소문화축제 고하노라를 알아보자.

조선시대 유소 문화를 계승하다
지난 10월 3일, 우리 학교 유생문화기획단 청랑이 주관하는 2023 유소문화축제 고하노라(이하 고하노라)가 열렸다. 고하노라는 조선시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던 유소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문화 축제다. 유소란 유생의 상소의 준말로, 조선시대 유생들이 국가 정책이나 성리학 이념의 실현을 저해하는 사항에 대해 의견을 모아 임금에게 전달하던 정책건의서의 일종이다. 전국 각지의 유생들은 한데 모여 조정에 올릴 상소문을 함께 논의했고, 유소는 유생들의 행진을 통해 궁궐의 국왕에게 전달됐다. 이에 국왕이 직접 답변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으며, 이 답변을 비답이라 불렀다.

유소의 과정을 고증한 세부 프로그램
고하노라는 유소 문화를 고증해 △대한민국 청년상소 프로젝트(이하 상소 프로젝트) △대의사 △소행 △소반비답 순서로 진행됐다. 사전 행사인 상소 프로젝트는 당해 고하노라의 주제에 대한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받는 공모전이다. 이는 유생 공론의 가장 근본적인 의의를 재현하는 프로그램으로, 매해 시의성 있는 사회 문제가 주제로 선정된다. 이번 고하노라에서는 다양한 세대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정책 고안이 주제였다. 이때 장원을 수상한 팀이 행진유생의 대표인 소두가 되며, 장원작은 상소문이 된다.

고하노라의 첫 활동인 대의사는 조선시대 유소 행진의 준비 과정을 복원한 연극이다. 청랑과 행진유생은 연극을 통해 △소두 임명 △상소문 낭독 △화압 의식 △통알 의식 등을 고증하게 된다. 유소에 참여한 유생들의 이름을 명부에 적는 전통이었던 화압 의식은, 고하노라에서 화압판에 지장을 찍어 나무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각색됐다. 유소를 위해 전국 각지의 유생들이 서로 연락하던 전통인 통알 의식의 경우 단별 친목 미션으로 각색돼 행진유생들이 서로 유대감을 쌓을 수 있게 했다.

대의사를 준비하는 행진유생들.  ⓒ유생문화기획단 청랑 제공
대의사를 준비하는 행진유생들. ⓒ유생문화기획단 청랑 제공

다음으로 진행되는 소행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임금에게 유소를 전달하기 위해 행진하던 모습을 재해석한 활동이다. 행진유생들은 상소문이 담긴 청금궤를 들고 성균관 문묘에서 청계광장에 이르기까지 종로구 일대를 행진했다. 행진은 조선시대 유소 행진을 보좌하던 군졸의 이름을 딴 실무단인 아방사령의 보조와 서울경찰청의 도로 통제 하에 원활히 진행됐다. 이는 ‘왕족이라 할지라도 유소 행진을 막을 수 없다.’는 태학지의 내용에 담긴 유소의 권위를 보존한 것이기도 하다. 행진유생으로 참가한 양재연(인공지능 20) 학우는 “안전하고 성공적인 소행을 위한 여러 실무진의 노력이 느껴졌다”며 “막힘없이 진행된 소행 퍼레이드에 시민분들의 관심이 더해져 보람차고 신났다”고 전했다.

소행을 떠나는 행진유생들. ⓒ유생문화기획단 청랑 제공
소행을 떠나는 행진유생들. ⓒ유생문화기획단 청랑 제공

마지막 활동인 소반비답에서 소두는 유소를 관련 분야의 현 공직자에게 전달하고, 공직자는 유소에 비답한다. 이번 고하노라에서는 교육부 나주범 차관보가 직접 비답을 내렸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교내외 동아리의 전통문화가 가미된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우리 학교뿐만이 아닌 청년들의 공론장으로 도약하기까지
이번 고하노라는 우리 학교 학우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기존 고하노라에서 나아가, 국가와 전국 청년의 정책적 소통이라는 유소의 본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고하노라는 이전까지 후원받는 교외 재단 행사와 협업하여 진행됐지만, 올해는 교내 캠퍼스타운과 학생처의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청랑 장의 김효정(컬처테크 22) 학우는 “행사를 자유롭게 꾸릴 수 있게 된 만큼 행사 개편과 외부 홍보에 힘써 청년들의 공론장 형성이라는 유소 문화의 의의를 되살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보다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사전 행사의 명칭을 상소공모전에서 대한민국 청년상소 프로젝트로 변경하고, 참가 방식을 팀별 *아이디어톤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김 학우는 “행사의 주체가 청년임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교외 청년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명칭 개편을 결심했다”며 “올해 도입한 팀별 아이디어톤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한데 모여 나랏일을 논하던 유소 문화를 재현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전했다. 또한 교내에 비해 저조했던 교의 참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외부 홍보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김 학우는 “실제로 올해 상소 프로젝트는 교내외를 통틀어 역대 최다 인원이 참가했으며 교외 팀이 *탐화를 수상하기도 했다”며 “본행사인 고하노라의 경우 행진유생은 우리 학교 학우들로 구성했지만, 소반비답 무대 공연팀으로 서울대와 고려대의 전통 공연 동아리를 섭외하여 외부인의 행사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고하노라에서 청년 공론의 의의를 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첫 시도인 만큼 난관 역시 존재했다. 우리 학교 학생지원팀 최민규 계장은 “행사를 독립시키며 사전행사가 아닌 본행사에도 다양한 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려 노력했으나, 시간 및 예산상의 문제로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했다”며 “올해는 공연팀으로 교외 동아리를 섭외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타교 및 기관과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리 학교 성균인성교육센터 한승일 책임연구원은 “유소는 성균관뿐만이 아닌 전국의 모든 유생을 대변할 의무가 있었고, 이러한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이를 계승하는 고하노라가 우리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모든 청년 지식인과 국가를 잇는 언로로서 기능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이디어톤=아이디어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팀원들이 함께 주어진 시간 동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방식.

◆탐화=대한민국 청년상소 프로젝트의 3등상으로,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우수 급제자 3인을 차례로 장원, 아원, 탐화로 칭하던 데서 유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