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올해 성대문학상 희곡 시나리오 부문에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 다수 응모했다. 응모 편수도 작년의 2배가 넘었다. 응모작들은 고단한 시대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었고 그 아픔이 작품의 동력이 되는 것을 읽으며 무척 반가웠다. 

글쓰기 특히 문학 창작은 관념적인 행위도 감상적인 토로도 아닌 치열하고 강인한 정신의 발현이고 실체적인 몸짓이기 때문이다. 고난에 대항하는 고민보다 고난을 품는 고민이 더 생산적이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열 수 있다. 응모작 대부분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3편으로 한정된 수상작을 뽑았다. 

가작 <Born to be actor>에는 AI를 갖춘 인조인간이 배우로 등장한다. 과학과 기계 문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 소외를 경험했던 현대인은 AI 출현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산다. 이 시나리오의 작가는 감정과 창작의 영역으로 그 소외가 확장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실제 배우와 AI 배우의 대립 상황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오래전부터 염려해 왔던 내용이라서 상투적이다. 게다가 작품 대부분의 대사를 차지하는 실제 배우 해수의 항변은 시대의 묵시록이라기보다 고민의 깊이가 얕은 투덜거림으로 들린다. 반전은 영화의 엔딩을 알리는 암전 이후에 발생한다. 실제 배우보다 말을 절제한 AI 배우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다변은 실제 배우를 하찮게 만들었다. 작품은 AI 시대를 다루는 듯해도 진짜로는 말의 본질을 ‘질문’하고 있었다. 여운이 남는 시나리오다.

우수작 <사라지는 연습>은 희곡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앞서 궁극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투고자는 형식적인 실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이 문제를 극의 주제로 제시하고 있다. 무대에서의 실험 자체로 세상을 보는 시각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희곡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문은 5명의 등장인물을 1인극 또는 2인극으로 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희곡을 읽으면서 일시에 엇갈리거나 마주치는 인물들을 어떻게 한 명 또는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력을 줬다. “사실 이게 가능할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와 “무대에선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등장인물의 대사는 여러 실험을 제안하는 지문들과 어울리면서 작품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작품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부분도 있었다. 기성 평론가나 작가의 글을 에피그래프(epigraph)나 극의 대사로 쓰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에피그래프는 묘비명이라는 뜻이다. 극의 의미를 무덤에 가둘 수도 있다. 기성 글 인용이 희곡을 습작의 성격으로 끌어내리고 있어서도 아쉬웠다. 기존 문장에 대한 순종이 실험들로 가득 찬 극과 유쾌하지 못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꼭 인용하고 싶다면 종속, 순응하기보다 대화적 관계로 확장하면 어떨까 한다. 그래도 극의 실험성은 높이 샀다.

굳이 해석도 분석도 필요 없는, 아니 굳이 해석도 분석도 하고 싶지 않은 그 자체로 내용이 되고 의미가 되는 작품은 뛰어난 그리고 좋은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우수작으로 뽑은 <물고기가 되고 싶어!>가 그런 작품이다. 이 시나리오는 고전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도 하고 현대인의 자화상을 반추하게도 하지만 그 너머로 상상력을 펼쳐 생기 있는 변신을 그린다. 이때 꿈과 숨의 독특한 교차가 작품의 매력을 한껏 올리기도 했다. 살기 위해서 꼭 숨을 쉬어야 한다. 그렇다면 꿈은? 물고기가 되는 일은 엉뚱한, 비현실적인 꿈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밝아서 ‘그래서’ 슬픈 영화를 만들고 있다. 투고자의 다른 응모작 <나에게 온 시집>이 마지막까지 최우수 자리를 두고 다투었다. 한 응모자의 작품 2개를 선정할 수 없어서 밀려났지만 시(詩) 곧 글이 인격이 되는 <나에게 온 시집>도 뛰어났다.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개성을 지닌 많은 투고자의 가능성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치열하게 글을 쓰는 그들이 더 넓은 세상을 열 것을 의심치 않는다. 

 

오종우(러시아어문학과)·변혁(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