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기억-망각의 구조로 재구성하는 3•11 동일본대지진

김경민(국문 18)

 

1. 3•11 동일본대지진의 양가성과 기억-망각의 작동
 이 연구는 알라이다 아스만이 밝혀낸 기억과 망각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3•11 동일본대지진과 연루된 현지 텍스트들의 기억-망각 구조를 밝혀내려 한다. 알라이다 아스만에 따르면, 기억과 망각은 분리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 기억과 망각의 구성은 동시에 이루어지고 각자의 구획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따라서 3•11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기억과 망각의 구성은 아직도 수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그 중심엔 무엇을 기억하고 또 무엇을 은폐하느냐에 따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일본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2)이 3•11 동일본대지진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각각의 영화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재난 상황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인물들의 대응을 그려낸다. 세 작품 모두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는 점은 이들의 연쇄로 촉발된 집단적 무의식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이들이 3•11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은폐하고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3•11은 단순히 지진과 쓰나미로 구성된 천재지변이 아닌 후쿠시마 원전 사태라는 인재(人災)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여전히 인류에게 크나큰 위협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이 회복되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방사능오염수는 계속해서 해양으로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원전 사태의 존재는 일본이 3•11을 편하게 애도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일본은 지진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원전 사태의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3•11에 대해 스스로, 혹은 대외적으로 기억과 망각의 이중구조를 작동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스카리 유바의 『요코하마 역 SF』(2016)은 일본의 의도적인 후쿠시마 기억상실증을 가장 급진적으로 사유한 작품이다.

 먼저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은 먼저 미성년의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3•11 이후를 살아갈 미래세대를 제시한다. 그들은 느닷없는 재난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를 부여받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영화가 발표된 순서에 따라 인물들은 점점 재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재난사회에서의 삶을 모색한다. 이때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재난은 혜성, 폭우,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다. 이로써 일본의 피해자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원폭의 이미지와 유사한 재난의 이미지가 등장할 때 더욱 강화된다. 

 재난 3부작은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가해적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한다. 그들이 망각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은 인재로서의 3•11, 즉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다. 천재로서의 3•11은 끊임없이 작품 내에서 재현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으며 비가시화된다. 후쿠시마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유기되고, 원전 사태는 물의 이미지로서 더욱 비가시화된다. 3•11에서 경험한 물의 두 가지 성격, 쓰나미와 방사능오염수는 각각 밀물과 썰물의 이미지로 치환될 수 있는데 작품 내에선 한결같이 육지로 밀려드는 물의 모습만이 등장할 뿐이다.

 『요코하마 역 SF』(2016)는 작품의 주요 소재인 일본 열도를 뒤덮은 요코하마 역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일본의 기억상실증을 지적한다. 요코하마 역과 역사로 뒤덮인 토양은 이분적 구조로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띤다. 이는 토양이 장소로서 기억의 매체이기 때문이고 이는 요코하마 역은 지성체를 상실한 상태에서 남은 기억만으로 증식하는 것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작품은 또한 해안가와 폭발의 소재는 방사능 오염물질을 배출해내는 후쿠시마 원전의 환유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 해안가는 역사 내에서 기물 파손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부정이용자를 내쫓는 곳이며 여러 쓰레기들이 망각을 위해 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방사능오염수를 끊임없이 해양으로 배출하는 원전처럼 말이다. 한편 바닷물에 약한 요코하마 역은 자폭을 통해 콘크리트를 날려 바다 건너를 전염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자폭이라는 형태, 그리고 그 결과로서 흩날리는 콘크리트는 후쿠시마 원전의 수소 폭발과 그로 인한 대기 중으로 방출된 방사능 오염물질을 연상하게 한다.

 결정적으로 요코하마 역의 확장을 지탱하는 언어체계는 그 자체로 완고한 기록물보관소이다.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언어체계에 의해 요코하마 역은 끊임없이 기억을 복제하고 열도의 토양을 은폐한다. 그 모든 망각과 기억상실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3•11의 기억-망각 구조의 불안함과 필연적 종말이다. 요코하마 역의 붕괴가 그 어떤 누구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필연적이었다는 것, 그 근거로서 제시되는 토양은 3•11을 둘러싼 기억-망각의 구조가 지닌 숙명적인 전복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2. 비가시화되는 원전의 후쿠시마, 쓰레기의 형상
 알라이다 아스만은 ‘선별’을 기록물보관소의 핵심 역할 중 하나로 제시한다. 무엇이 기록되고 기억되는가의 문제는 불필요한 것을 골라 버리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선별에 의해 불필요한 것들로 규정된 것들은 쓰레기가 되어 기록물보관소가 아닌 망각의 구획 안으로 포섭된다. 기록을 통해 기억할 대상을 고르는 일은 기억하지 않을 대상을 고르는 일과 정확히 맞닿아 있고 그들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기억과 망각의 모순적인 동류 구조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문화적 소재와 유해 핵물질의 저장 조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쪽에선 후세를 위한 보존과 자료의 보관이, 다른 한쪽에선 가능한 한 후세에게 무해하도록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에 이 두 저장고들은 모두 최고의 안전상태로 유지된다. 그럼에도 둘을 구분하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가시성’의 문제다.

  기억의 대상은 가시화된 기억 공간 속에서 계속해서 호명되고 재구성된다. 기억의 공간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의미의 구성, 정체성 확립, 삶의 방향 제시, 행동의 동기를 찾고자 할 때 과거를 부분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생겨나고, 그 기억의 단면은 미래의 지평을 연다. 그에 반해 쓰레기는 사용 가치의 상실, 즉 기능과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사회가 관심과 주의를 갖지 않는다. 쓰레기는 철저히 비가시화되어 은폐된다. 망각은 언제나 비가시성을 동반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2)은 기억과 망각의 가시성이라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비가시화함으로써 망각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3부작이 모두 재난, 특히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미증유의 재해를 주요 모티프로 설정하고 제작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21세기 최악의 재해인 3•11의 반향인 이 작품들은 놀라우리만큼 원전 사태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다.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작품이지만 그 맥락 중 특정 부분만을 선별해 비가시화하고 망각의 차원으로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원전 사태 비가시화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소재가 활용된다. ①미성년, ②원폭 이미지, ③물의 이미지이다. 미성년의 주인공들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 이전 작품들에도 항상 등장하는 소재였다. 그들은 항상 ‘동경과 상실’의 세계에서 방황한다. 대표적으로 <초속 5센티미터>(2007)에선 물리적인 거리 등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하는 미성년들의 모습이 등장하고, <언어의 정원>(2013) 역시도 미성년의 주인공이 교사-학생 간의 사랑이 도덕규범에 좌절될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이들의 고난은 어디까지나 연애라는 개인적 차원 안에서만 국한된다.

 재난 3부작의 미성년 주인공들이 이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들에게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재난이 할당된다는 점이다. 이때의 재난은 물리적 위기로, 전작이 그려내고 있는 개인의 내적•심리적 위기와는 그 범위와 규모가 비교불가능하다. 작품 내에 3•11에 대한 암시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각각 혜성 충돌, 폭우, 지진의 형태로 나타나는 재난은 미성년 인물들에게 그들에 대응해야 한다는 당위로 인식된다. 전작들의 ‘동경과 상실’은 이 지점에서 재편된다. 전작들이 사랑의 상실을 인물의 유일한 위기로 그려냈다면, 재난 3부작에서 인물들의 위기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그 범주가 세계 전체로 확장된다.

 미성년의 인물들은 미래세대에 대한 은유로 각자의 방식으로 재난에 대응한다.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을 오가며 시공간을 전유한다. 그들은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혜성 충돌이라는 이미 발생한 재난을 초기화하려 시도하고 결국 이에 성공한다. 세계를 재난 이전의 상황으로 돌려 놓는 전작과 달리 〈날씨의 아이〉의 ‘호다카’와 ‘히나’는 재난 상황을 수용하고 재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스즈메는 지진이라는 재난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여정을 이어나가며 종국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한다.

 정리하자면 ‘타키’, ‘미츠하’는 이미 벌어진 재난 상황을 재난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호도카’와 ‘히나’는 이미 벌어진 재난 상황을 수용하고 그 속에서 삶의 방향을 모색한다. ‘스즈메’는 이를 넘어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앞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재난을 방지하려는 행동으로 나아간다. 신카이 마코토는 3•11의 상흔을 극복해야할 주체로 미성년을 상정하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영화 순서대로 보자면 이미 벌어진 재난 상황을 이전으로 되돌리며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너의 이름은.〉, 재난의 현실에서 현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한 뒤〈날씨의 아이〉, 재난의 위험과 등치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스즈메의 문단속〉를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재난을 자연에 의한 천재지변, 즉 불특정 다수에게 예고 없이 들이닥쳐 극복 불가능할 정도의 상해를 가하는 자연재해로 한정하고 있다. 3•11을 지진, 쓰나미의 천재(天災)와 원전 사고라는 인재(人災)로 나눈다고 했을 때, 그는 교묘히 천재만을 다루며 원전 문제를 비가시화시킨다. 이는 전후 일본의 원폭 이미지 구성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전후 일본의 원폭영화는 원폭을 자연재해로, 그리고 피폭을 백혈병과 같은 불치병으로 그리는데, 이는 원폭을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묘사해 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떠나 일본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의 재난 묘사가 원폭 묘사와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점이다.

 재난 3부작 속 등장하는 재난은 공통적으로 하강의 이미지를 갖는다. 〈너의 이름은.〉의 혜성은 우주 상공에서부터 내려와 밤하늘을 가르며 지상에 떨어진다. 마치 미사일과 같은 궤적을 따르며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에 떨어짐과 동시에 마을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날은 마을의 축제가 진행 중이었고 즐겁게 일상을 즐기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망하게 된다. 〈날씨의 아이〉 속 끊임없이 도쿄에 퍼부어지는 폭우의 이미지는 태평양 전쟁 시 미군 전투기에서 진행되던 공습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재난은 지진이다. 하강과는 정반대의 운동의 지진이지만 미미즈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그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뒤 하강해 마침내 지상에 닿을 때 지진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재난 3부작 속 재난은 이처럼 하강의 이미지로 지상을 덮친다. 축제가 진행 중이던 〈너의 이름은.〉의 이토모리 마을처럼, 〈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지상으로 떨어진 재난에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일상을 파괴당하는, 혹은 파괴당할 일본인들을 보여준다. 이는 원폭 영화가 그려냈던 ‘언제나와 같은 일상을 누릴 때 상공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평화의 파괴자로서의 원폭 이미지’와 상동한다. 3•11이라는 기억의 구성은 원폭의 회상 아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강화되는 건 일본의 ‘피해자성’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기억한다는 것은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가해적 사건을 잊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재난 3부작 내내 비가시화되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원폭의 기억을 가져오면서까지 망각의 영역으로 숨기고자 하는 일본의 새로운 가해적 사건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 연안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 이로 인한 쓰나미는 이 지역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공격한다. 지진으로 인해 외부 전원을 상실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자력발전소 6기는 뒤이은 해일로 주요 설비들이 침수되어 원자로 냉각 수단을 상실한다. 그 결과, 원자력발전소 1~3호기의 핵연료가 용융되고 이 중 일부가 원자로 용기 바닥을 통해 유출된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수소가 생성, 1~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다. 

 방사성 물질의 유출은 후쿠시마 지역 일대의 토양과 해양의 오염을 낳았다.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수입을 금지하고 있고, 해양으로 직간접적으로 고농도의 방사능오염수가 배출되고 있다. 특히 방사능오염수의 해양배출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도쿄전력은 2011년 4월 1일부터 6일 사이 후쿠시마 다이이치원전 2호기 취수구 부근에서 바다에 유출된 방사능물질의 양을 4,700조 Bq로 추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의 3배인 1경 5,000조 Bq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해양배출은 유엔해양법협약, 런던협약, 런던의정서 외의 7개의 국제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

 김기순(2011)에 따르면, 국제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선 국제의무 위반 외에 국가 귀속성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후쿠시마 원전의 관리주체인 도쿄전력의 경우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원자력 시설 운영에 대해 국가의 감독과 규제를 받는 기업이기 때문에 일본정부에 귀속된다고 봄이 마땅하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도쿄전력의 원자력안전기준 이행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고 노후원전의 가동을 묵인함으로써 원전사고의 발생과 방사능오염수의 해양방출을 초래하고 해양환경을 오염시킨 데 대해 국가기관으로서 책임이 있으며, 국가 귀속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신카이 마코토가 그려냈던 미성년의 천재 대응, 그리고 원폭 이미와 흡사한 재난의 이미지는 일본의 피해자성을 부각하며 동시에 방사능오염수 해양배출이라는 가해적 사건을 철저히 망각의 영역으로 매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재난 3부작에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는 이러한 일련의 기억상실 과정의 종지부를 찍는다. 

 재난 3부작에서 물은 그것이 호수이든, 바다든 혹은 강우이든지 간에 육지로 밀려든다. 〈너의 이름은.〉에서의 혜성 충돌 직후 형성된 거대한 호수와 〈날씨의 아이〉의 강우가 만들어낸 도쿄의 바다,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쓰나미의 이미지까지. 이는 3•11이 보여준 압도적인 쓰나미 형상의 메타포임과 동시에 육지에서 바다로 방출하는, 이를테면 썰물의 형상인 방사능오염수를 무화시킨다. 이에 관객들은 재난 3부작에 등장하는 압도적인 물의 이미지를 바다로 향하는 방사능오염수가 아닌 육지로 밀려드는 쓰나미의 형상으로 기억하게 된다. 이미 비가시화된 원전 사태와 그로 인해 발생한 방사능오염수는 새로운 기억에 뒤덮힘과 동시에 완전히 은폐된다.

 신카이 마코토가 재난 3부작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기억의 지형은 아름답기에 위험하다. 그는 타고난 서정성으로 그 모든 망각의 윤곽을 다듬어낸다. 비가시화된 원전 사태 대신 미성년, 원폭, 그리고 물의 이미지는 그가 재현한 3•11을 천재지변, 그리고 피해자성과 결합해낸다. 그 과정에서 방사능오염수 해양배출이라는 일본의 가해적 사건은 완전히 잊혀진다. 그리고 그 이면의 중심엔 오염된 땅이자 아직까지도 방사능오염수를 바다로 배출해내고 있는 망각된 쓰레기, 후쿠시마가 존재한다. 


3. 기억-망각 구조의 메타포와 그 위태로움
 이스카리 유바의 『요코하마 역 SF』(2016)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이 보여주는 후쿠시마의 기억상실증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다. 이스카리 유바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잊혀진 후쿠시마를 아예 일본 열도 전체로 환원한다. 그는 전 일본 열도를 뒤덮은 요코하마 역사를 통해 3•11 이후 구성된 일본의 거대한 망각 구조를 폭로한다. 또한 재난 3부작의 3•11 재현의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기능한다.

 이스카리 유바의 『요코하마 역 SF』(2016)에서의 일본은 스스로 증식을 시작한 요코하마 역사에 뒤덮인 채 등장한다. ‘겨울전쟁’이라고 하는 세계대전 도중 일본 열도를 뒤덮고 있는 철도 네트워크 베이스의 JR 통합지성체가 탄생한다. 통합지성체는 인간 바탕의 정부를 두면서도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로 군림했지만 열도의 황폐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통합지성체가 내린 결정은 인간에 의한 수복작업으로는 자신을 유지할 수 없기에 유닛에 자율적인 수복기구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후 물질구조의 기억과 복제, 그리고 그 전파성을 지닌 양자장을 이용한 지성체 네트워크의 자기수복 시스템이 탄생하고 요코하마 역사는 무한으로 증식하기 시작한다. 철도망을 넘어 국토 전체까지 뒤덮어버린 요코하마 역은 3•11 이후 후쿠시마라는 쓰레기를 망각의 영역에 매장하고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건설하는 일본의 기억-망각 구조의 완전한 환유다.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에서 확인했듯이 그토록 원전 사태를 비가시화하고, 기억상실로 이끌어가는 시도를 했음에도 아직도 후쿠시마라는 장소는 남아있고 따라서 여전히 원전 문제는 제기된다. 이는 장소가 그 자체로 기억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장소 역시 이동 가능한 전달 매체인 문자나 그림과는 다른 기억의 매체로서 확고한 부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장소는 사라져 버리는 기억을 물질로 받쳐주는 불변의 버팀목이다. 즉, 아무것도 묘사하거나 표상하지 않으면서 부재하는 것의 흔적을 다소 강조하여 표시해 주는 ‘지금’이 결여된 ‘여기’인 것이다.” 

 기록과 저장의 매체와는 달리 장소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 장소가 인공의 건축물이 아닌 토양 그 자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장소는 부동의 물질성을 바탕으로 기억의 지층을 쌓아나간다. 따라서 원전 사태로 인해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는 그 자체로 방사능오염수 해양방출이라는 일본의 가해적 사건을 기억하는 매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코하마 역 SF』의 세계의 토양 역시 황폐화된 상태로 이미 몇 세기 전 겨울 전쟁 말기에 사람이 생존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어버렸고, 이후의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쓰레기로 분류되어 잊혀진 땅은 그 자체가 기억을 품고 있다. 자연스레 후쿠시마와 겨울 전쟁 이후 열도의 토양은 연루된다.

 한편 요코하마 역사에 의해 뒤덮인 열도의 오염된 토양의 모습은 한국의 난지도를 연상하게 한다. 난지도는 1978년에서 1993년,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으로 활용되었다. 지금의 난지도에 조성된 공원은 그 쓰레기 위에 하염없이 복토를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난지도 쓰레기장은 서울시민의 모든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집단적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는 장치였고, 현재의 인공산은 이를 완전히 은닉하고 있다. 요코하마 역사 역시 오염된 토양에 복토를 끊임없이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요코하마 역사의 확장은 곧 더 많은 지면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고 비가시화된 토양은 그 무수한 전쟁과 파괴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로 잊혀졌다.

 쌓아 올린 철도의 복토 위엔 역사가 스스로 습득한 기억이 복제된다. 역사는 구조유전계라는 시스템을 통해 증식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각종 물질을 기억하고 이를 또 다시 복제한다. 역사 또한 매장된 토양과 같이 기억의 매체로서의 장소인 것이다. 다만 역사는 지나친 확장으로 지성체의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따라서 역사의 활동은 습득한 기억을 토대로 한 복제밖에는 없다.

 요코하마 역사 내에서 기물 파손이 중범죄에 해당하는 근거는 이러한 유래에 있다. 기물 파손은 역사가 쌓아올린 기억을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행위이다. 지성체를 잃었기에 남은 기억만을 바탕으로 증식하기 시작한 역사에게 기억의 붕괴는 곧 절멸이다. 또한 역사의 기물에 대한 파괴와 해체는 곧 토양의 가시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잠재된 기록물보관소로서의 토양은 요코하마 역사에겐 구조 유지의 상당한 위협이다. 역사 자체가 겨울 전쟁의 기억을 담지하고 있는 토양 위에 복토를 쌓아올린 형태이고, 그 복토 위에 역사의 기억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자동개찰구는 기물 파손 등을 일으킨 부정이용자를 가장 가까운 역공에 기계적으로 내쫓는다. 역사라는 또 다른 기억의 매체에서 그들은 은폐되어야 하고, 기록물보관소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쓰레기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배출되는 장소는 중요하다. 그곳은 역사에겐 쓰레기 매립장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대부분 산악부의 불모지대 혹은 해안이다. 산에 유기된 경우 주변에 식량이 없기 때문에 생존확률이 극히 낮지만 해안으로 추방된다면 99단과 같은 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99단과 같은 해안가의 마을은 요코하마 역이 바닷물에 굉장히 약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형성된 마을이다. 그곳에선 역내의 온갖 쓰레기들이 배출되어 99단의 거주민들은 그 쓰레기에서 먹을 것을 찾아 생존을 이어나간다. 

 바다를 향한 쓰레기의 배출은 한편으론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앞서 살펴본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에서의 바다에서 육지로 들이닥치는 밀물의 이미지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오염수 해양방출을 무화시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해안에선 역사의 네트워크에 등록되지 않은, 즉 기억되지 못한 이들이 살아간다. 요코하마 역사의 증식을 되돌리는 스위치를 누르고 도망치는 히로토는 바다에 가라앉은 나고야로 배출된다. 그리고 그곳은 요코하마 역으로 뒤덮이기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의 유적이 있었다. 

 나고야는 요코하마 역 증식 이전부터 함몰되어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내의 인간들은 모두 건축물이 자연히 생긴다고 믿기에 폐빌딩이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고야라는 장소이자 망각된 기억의 매체는 바다 속에서 그 어떤 도시보다 먼저 은폐되었기에 자신에게 기입된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곳으로 히토로가 배출된 이유는 그 역시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기억의 구조를 훼손하려는 이들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배출하는 곳, 또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생산품이 쓰레기가 되어 망각을 위해 유기되는 쓰레기장, 그리고 날 때부터 기억되지 못한 이들의 터전인 해안가, 망각의 영역으로 선별된 대상을 온전히 간직하는 안티기록물보관소의 모든 성질은 단 하나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역사에 뒤덮여버린 거대한 일본 열도의 토양이 후쿠시마 원전의 메타포인 또 다른 근거는 다름 아닌 폭발에 있다. 역사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후쿠오카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폭을 사용한다. 연결통로 끝부분의 자폭을 통해 역사는 콘크리트를 흩뿌려 맞은편을 구조유전계로 전염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폭은 앞서 살펴본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의 원폭의 형상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다. 오히려 그것은 실제 후쿠시마에서 일어났던 원전 수소폭발과 유사하다. 또한 자폭으로 콘크리트를 흩뿌린다는 설정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대기 중으로 방출된 방사능물질을 떠오르게 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방사능물질 중 상당량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고 이는 2011년 기준 발생된 방사성물질 중 전체 10%로 추산된다. 역사는 해안가를 향한 쓰레기 배출과 콘크리트를 분사하는 자폭의 형태로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방사성오염수. 그리고 대기 중으로 방출된 방사능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후쿠시마의 메타포로서 열도의 오염된 토양은 최고의 안전상태로 보관, 유지되어야 한다. 후쿠시마는 그 자체로 원전 사태라는 유해한 기억을 갖고 있는 핵 폐기물과 같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JR 통합지성체는 해독할 수 없는 형태의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오직 통합지성체만이 해독하고 조작이 가능했던 독자적인 언어체계는 요코하마 역의 지나친 확장에 따른 지성체 기능의 상실로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고 바이너리, 즉 2진법의 데이터 형태 그대로 방치된다. 아무도 해독할 수 없게 된 JR 통합지성체의 언어체계는 “읽을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지식의 보고로서의 기록물보관소가 내포한 역설적 구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유키에 씨’가 등장하는데, 그는 홋카이도로 본거지를 옮긴 JR 통합지성체였다. 유키에, 즉 JR 통합지성체는 요코하마 역을 붕괴시키려 한다. 그는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요코하마 역이라는 장소 위에 또다시 복토를 쌓아 새로운 기억의 장소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그는 독자적인 언어체계로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안드로이드, 그리고 구조유전계를 파괴하는 캔슬러와 같은 기술을 만들어내 요코하마 역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가 본거지로 있는 JR 키타니혼의 통신은 스이카넷의 그것과 유사하게 다른 이들은 해독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고 따라서 굉징한 보안성을 유지한다. 

 결국 요코하마 역의 붕괴는 시작된다. 유키에가 만들어낸 안드로이드와 구조유전계 캔슬러는 히토로를 은폐된 망각의 장소, 42번 출구로 이끌었다. 통합지성체 개발 연구소인 그곳에서 통합지성체의 보수관리자였던 교수가 등장하고, 히토로에게 요코하마 역의 구조유전계를 역으로 작동시키는 스위치를 누르기를 요구한다. 자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빼앗을 수 있냐는 히토로의 말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자네는 지금 「권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건 적절하지 않아. 나는 자네에게 이 요코하마 역의 운명을 선택해달라고 하는 게 아니야. 혹시 자네가 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음 방문자를 기다리게 되겠지. 그건 내일일지도 모르고 백 년 뒤일지도 몰라. 다만 언젠가 끝은 오겠지. 그건 정해진 일이야.”

 교수는 요코하마 역의 종말이 필연적인 것이고 그 누구의 선택과 의지와 무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코하마 역 SF』가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이 조성한 원전 사태 망각의 대안을 제시하는 순간이다. 은폐되고 망각된 쓰레기의 장소 후쿠시마, 정확히 후쿠시마 원전은 망각 속에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억은 망각의 농도가 짙으면 짙을수록 비가시화된 자신의 윤곽을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재난 3부작을 보며 무언가 꺼림칙한 공백을 느끼듯이 말이다. 요코하마 역과 그 아래 위치한 토양이 보여주는 오늘날 일본의 기억상실증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망각을 위한 기억의 구성은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으며 그곳엔 어떠한 이성적 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쿠시마라는 장소가 물리적으로 존속하는 한, 그곳의 토양과 해양은 만성적 오염의 상태일 것이며 후쿠시마는 물질적인 기억의 매체로서 결여 그 자체를 표상할 것이다. 3•11을 둘러싼 기억과 망각엔 따라서 항상 전복의 가능성이 내포되어있다. 이 전복의 가능성은 일본의 피해자성과 가해적 사건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내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지금도 방사능 오염은 지속되고 있고 실질적인 피해자는 동아시아 일대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란 것이다. 난지도가 그러하듯, 후쿠시마를 망각의 지층에 매장하고 그 위에 복토를 쌓아 만든 현재의 3•11 기억은 지금 이 시점에도 침출수와 유독가스를 방출해내고 있다. 그 유독성은 방사능 오염에 기인한다. 이러한 지점은 범세계, 특히 동아시아 일대 내의 거주민 중 그 누구도 이 구조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4. 망각의 쓰레기장을 파헤치자
 이 연구는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과 망각의 상호작용 이론을 토대로 3•11 동일본대지진을 둘러싼 치열한 기억-망각 투쟁을 추적했다. 3•11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은폐되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3•11이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닌 후쿠시마 원전 사태라는 인재도 포함하는 양가성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과 망각은 일본을 이 재난의 피해자로, 혹은 가해자로도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이러한 층위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3부작은 후쿠시마 원전을 철저히 비가시의 영역으로 위치시키며 일본의 피해자성을 강화한다. 이를 위해 미성년, 원폭 이미지, 또 물의 이미지가 활용됐으며 후쿠시마는 망각되어야 할 쓰레기로 전락한다. 이스카리 유바의 『요코하마 역 SF』는 이러한 후쿠시마를 완전히 소외시키는 기억과 망각의 연쇄를 요코하마 역이 뒤덮은 일본 열도를 통해 고발한다. 이때 일본 열도는 기억의 매체로서 후쿠시마의 메타포이기 때문에 그를 은폐하려는 요코하마 역은 망각에 의해 형성된 3•11의 기억으로 독해할 수 있다. 따라서 작중 요코하마 역의 붕괴가 필연적이었음은 일본의 3•11 기억 구조, 혹은 망각 구조 역시 매우 위태로운 상태임을 암시한다.

 3•11로부터 촉발된 방사능의 위협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닌 전세계를 향한다. 이미 세계 곳곳에 위치한 원전은 당연히 잠복 중인 위험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군사적 긴장이 하루가 다르게 고조되고 있는 중국-대만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이제 핵전쟁은 비단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주된 소재로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핵전쟁이 남기게 될 문명의 절멸과 방사능의 후유증은 점점 상상이 아닌 현실에 근접해가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일본이 3•11을 기억하는 방식이 중요해진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폭 국가임과 동시에, 체르노빌과 같은 명백한 인재가 아닌 천재와 인재가 뒤엉켜있는 원전 사고 경험 국가의 방사능에 대한 태도는 어쩌면 방사능을 대하는 인류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전세계적 위기 속에서 꿋꿋이 후쿠시마를 은폐하려는 일본의 태도와 동시에 핵무기를 양산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주변국들을 보고 있노라면 단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망각의 쓰레기장 깊숙한 곳에서 3•11을 꺼내야만 한다. 더 나아가 3•11만이 아닌 현재의 기후 위기, 군사적 긴장, 괴물화된 소비 체계, 극심한 개인 소외와 구별 짓기 외의 임계점에 다다른 모든 인류 위기에 손이라도 써보기 위해선 쓰레기장을 뒤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은폐하고 망각했는지 확인하고, 처방하는 과정이 절실하다. 인류는 그 무수한 상실과 파괴의 경험에서 단 하나의 깨달음도 얻지 못했다.

 

각주

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변학수 • 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34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474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479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557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524쪽.

김정희, 「풍경과 내면 – 일본의 고전과 『초속 5센티미터』」, 『일본연구』 74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2019, 344-346쪽.

강태웅, 「원폭영화와 ‘피해자’로서의 일본」, 『동북아역사논총』 24호, 동북아역사재단, 2009, 48쪽.

강태웅, 49쪽.

강태웅, 41쪽.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사건 개요는 전지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현황과 우리의 대처 노력」, 『Future Horizon』 42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9, 83-84쪽에서 요약 및 발췌.

김기순,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해양배출에 대한 국제책임 연구」, 『국제법학회논총』 56호, 대한국제법학회, 2011, 51쪽.

유엔해양법협약, 런던협약, 런던의정서, 핵사고 조기통보협약, 원자력안전에 관한 협약의 당사국으로서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양환경보호의무, 런던협약과 런던의정서의 사전협의의무, 핵사고 조기통보협약의 사전통보의무, 원자력안전에 관한 협약의 원자력안전성 준수의무, 이상의 내용은 김기순, 2011, 78-79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560쪽.

임태훈, 「난지도가 인류세에 묻는 것들」, 『문화과학』 97호, 문화과학사, 2019, 132쪽.

김기순, 2011, 51쪽.

알라이다 아스만, 2011, 500쪽.

이스카리 유바, 『요코하마 역 SF』, 손종근 옮김, 소미미디어, 2021, 254쪽.
 

김경민(국문 18) 학우.
김경민(국문 18)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