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다솔 기자 (sputnik@skkuw.com)

경험은 사람을 노련하게 하지만, 동시에 틀에 가두기도 한다.

스물셋 평생을 글 좀 쓰는 애로 살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별별 활자를 다 끼고 산 탓이다. 학창시절엔 교내외 글쓰기 대회에서 종종 입상했고, 대학 입학 문도 논술로 뚫었다. 2년을 바친 학생단체에서는 사람 몇백 명을 운용할 대행사 기획서를 썼고, 신문사에 들어온 직후 한 학기의 수습 트레이닝도 큰 문제 없이 마무리했다. 웹하드에 첫 수습 웹기사 완고를 올리던 순간까지 생각했다. 아, 이거 괜찮네. 생각보다 할 만한데? 그렇게 나도 모르게 다져 온 편협한 틀을 더욱 견고히 하던 와중.

과장 좀 보태서 그게 와장창 깨졌다. 방중 활동 시작 2주 만의 일이다.

준정기자 타이틀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잘 아는 소재, 상냥한 사수, 너그러운 체커를 만났던 수습 때와는 달랐다. 지면에 실리는 단독 기획 기사는 수습 웹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통찰력을 요구했다. 기획 회의에 처음 문건을 들고 간 날. 날아오는 피드백을 강박적으로 받아 적고, 화면 가득 들어찬 빨간 글씨를 찬찬히 뜯어봤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양의 피드백에, 턱 끝까지 올라왔던 자기변호가 속절없이 미끄러졌다. 선선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전부 타당했다.

스스로의 평범함에 충격받고 첨예한 피드백에 압도당하고 아무리 머릴 굴려도 나오지 않는 흐름에 답답해하고..., 그런 류의 좌절은 길지 않았다. 어린 시절 끼고 살던 별별 활자 중 하나가 수순처럼 떠오른 탓이다.

[-1957년 10월, 우주 기술력으로는 약체로 평가받던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다. ‘어린 동반자’라는 뜻의 스푸트니크(Sputnik) 1호 발사 소식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선사한다. 당시 우주 강국으로 통하던 미국은 보란 듯이 상공을 가로지르는 스푸트니크호를 마주하고...,]

이 경험은 내 스푸트니크다. 치기 어린 자만심을 똑 떼놓은 나의 동반자다. 아마 이름처럼 날 따라다니며 오래도록 괴롭힐 테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

[...이후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한 미국은 12년 뒤 인류 최초로 달을 밟는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아 넣으며 우주 강국 타이틀을 탈환한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우주개발에 있어 폭발적인 발전의 동력이 된 50여 년 전 그 순간을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라 칭한다.]

그러니 단언할 순 없어도 바란다. 지금이 나의 스푸트니크 모멘트이기를. 이곳에서 겪은 충격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