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생들과 유교철학을 주제로 수업에서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학생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고민할 때마다 나는 유교철학을 공부해 온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실용적 적용력이 떨어진다고들 생각하는 인문학에서도 철학, 게다가 철학 안에서도 마이너리티라고 여겨지곤 하는 유교철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사회문제를 마주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사유 방식과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만의 특이함이 내가 공부한 유교철학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유교철학은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을 중시한다.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이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선한 영향력을 다른 사람과 사회로 확장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 과거보다 나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 쏟는 오늘을 살아내는 행동적 실천력에 관한 것이다.

공자의 철학을 나는 한마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정의하곤 한다. 안 되더라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보다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인간다운 배려와 존중이 당연해지는 세상을 위한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거다. 

이러한 유교철학의 정신은 내 삶에서 맨땅에 헤딩하기로 펼쳐졌다. 아무 기반과 경험이 없더라도, 이게 될까 싶더라도, 사심을 떨쳐내고 공적인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내 삶에 의미 있는 일이라면 해보는 거다. 해봐야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때론 나도 두려움과 마주하곤 한다. 한 개인이나 조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공적인 가치를 지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여기에 달려들려고 하다가도 ‘정말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며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봐야겠다는 용기를 주는 사람들은 학생들이다. 

최근에 우리 대학의 학생들을 만나보면 나보다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맨땅에 헤딩하기를 서슴지 않는 경우를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함께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함께함’에 기초하곤 한다. 그런 학생들의 기본 마인드는 참 선하다. 억지로 혹은 가식적으로 선한 게 아니라, 그래도 선후배들과 같이 가자, 그래도 좀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도전이 맨땅에 헤딩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또 즐겁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봐야지 하고 말이다.

어쩌면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도전정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감수하게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우리 학생들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혹여 맨땅에 헤딩하다 머리가 깨지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기에, 함께하기에, 아무리 봐도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아무 기반이 없어도 해볼 동기를 우리 학생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자신들도 모르게 수기치인의 철학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만나본 우리 대학의 교수님들은 얼마든지 학생들과 함께 맨땅에 헤딩할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생들이 헤딩하는 곳은 맨땅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할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반을 완충제로 깔아줄 수 있을까를 자기 일처럼 고민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곁에 있다. 

 

유학·동양학과 안승우 교수.
유학·동양학과 안승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