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규빈 기자 (kyubin@skkuw.com)

항생제 내성의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

항생제 내성 예방을 위한 국가 지원이 필요해

누구나 한 번쯤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 항생제는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줄이고 인간의 평균 수명을 늘리며 ‘마법의 약물’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성에 대한 걱정으로 항생제 복용을 꺼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항생제 복용을 꺼려야 할 만큼 항생제 내성이 위협적일까? 항생제 내성이 생기는 원리와 올바른 복용법에 대해 알아보자.


항생제,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다
우리 몸 곳곳에는 수백조 개에 달하는 세균이 존재하며 이들은 무려 체중의 1kg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세균은 사람의 영양 섭취를 돕거나 면역체계를 키우기도 하지만 결핵, 폐렴 등의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해 세균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약을 항생제라 한다. 1928년 스코틀랜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발견된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수많은 세균 감염 환자를 살렸다. 그러나 항생제가 상용화된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간단한 세균 감염 치료도 어려워질 위기에 놓였다.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항생제의 효과에 저항해 생존 혹은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학교 의학과 김경규 교수는 “감염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획득해 내성균이 되면 더 이상 해당 항생제를 사용해 감염균을 제어하지 못한다”며 “이는 감염균의 증식, 독소 생성 등을 일으켜 국소적 혹은 전신적 감염과 다중 기관 기능 장애를 유발해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6년 영국 정부가 발간한 항생제 내성 보고서인 「The Review on Antimicrobial Resistance」에 따르면 매년 70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생명을 잃고 있으며 이대로 항생제 내성의 확대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2050년에는 1,0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항생제 사용량이 OECD 29개국 중 세 번째로 높으며 국내 항생제 처방 중 25% 이상이 부적정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항생제 내성의 위험이 큰 국가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한상훈 교수는 “대표적인 항생제 부적정 사용의 예시에는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 감염에도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 △잘못된 항균 범위를 가진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 △항균 범위가 중복되는 항생제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경우 △항생제를 필요 이상으로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 등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항생제 처방을 관리하는 정책이 체계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 항생제를 부적정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세균의 생존본능에 의한 항생제 내성
38억 년 전 탄생한, 현존하는 생명체 중 가장 오래된 생명체인 세균은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지금껏 생존해 왔다.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것 역시 그들의 끈질긴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다.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방법은 크게 자연 내성과 획득 내성으로 나뉜다. 자연 내성은 세균 종류마다 고유한 특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특정 항생제에 내성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세균은 환경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항생물질을 분비한다. 그러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분비한 항생물질이 역으로 자신을 공격할 수 있어 자연적으로 이에 대한 내성 유전자를 갖는 것이다.

한편 획득 내성은 세균이 분비하는 항생물질이 아닌 외부의 항생물질에 대해 후천적으로 내성을 갖게 된 경우를 말한다. 한 교수는 “세균이 항생제에 노출되면 이에 적응해 염색체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거나 이미 내성 유전자를 가진 세균으로부터 내성 유전자를 전달받아 내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로 △표적의 접근 차단 △항생제 불활성화 △항생제 표적 부위 변화의 3가지 메커니즘에 의해 획득 내성을 얻는다. 세균은 세포의 경계막인 세포질막을 갖는데 세포질막의 단백질을 통해 항생제가 표적 부위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수성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질막에 있는 포린 단백질을 통과해 세균 내로 침투한다. 그러나 세균이 포린 단백질 생성을 감소시키는 내성 유전자를 획득해 포린 단백질을 감소시키면 세균의 세포질막의 투과성이 낮아져 항생제의 유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내성 유전자를 획득해 유출 펌프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면 항생제가 세균 내에 유입되더라도 즉시 밖으로 배출돼 항생제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 한편 항생제 불활성화는 항생제 자체를 분해하거나 변형시키는 효소를 만드는 내성 유전자를 얻어 항생제의 작용을 막는 메커니즘이다. 대표적인 항생제 중 하나인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3개의 탄소 원자와 1개의 질소 원자로 이루어진 고리를 기본 구조로 한다. 이때 세균이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고리 구조를 파괴하는 효소인 베타 락타마스를 분비하는 내성 유전자를 얻으면 항생제를 불활성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항생제는 세균의 특정 부위를 표적으로 하므로 항생제가 작용하는 부위 자체를 변형시켜 항생제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이를 항생제 표적 부위의 변화라 한다.

 

여러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균
최근에는 여러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균이 증가하고 있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인 CDC의 2023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매년 280만 건 이상의 다제내성균 감염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3만 5,000건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에 비해 인구가 밀집돼 있고 항생제 구입이 의사 처방 없이 이뤄지는 나라의 경우 다제내성균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제내성균이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으로, 이는 세균이 다양한 항생제에 노출되며 다제내성을 갖게 한다. 따라서 다제내성균은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는 환자나 병원 내에서 발생하기 쉽다. 한 교수는 “병원 내에는 다제내성균이 많아 공용으로 사용하는 의료기기, 환자와의 접촉 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면역체계가 약하거나 기저 질환을 가진 사람의 경우 패혈증 등의 감염이 생기거나 염증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최근에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이하 CRE) 등 슈퍼 박테리아라고 불리는 다제내성균이 증가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CRE는 장내세균속균종 중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세균을 말한다. 이때 장내세균속균종은 사람의 장에 정상적으로 존재하지만 요로 등 다른 부위에 유입되면 혈류 감염 및 폐렴과 같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카바페넴계 항생제는 가장 최근에 개발됐고 항균 범위도 가장 넓어 강력한 항생제에 속한다. 한 교수는 “카바페넴계 항생제와 같은 강력한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CRE가 등장해 문제”라며 “CRE를 완전히 극복하는 새로운 항생제를 아직 개발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CRE 감염 환자 수는 2017년 5,717명에서 지난해 3만 8,324명이 돼 6년간 6배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료: 질병관리청
자료: 질병관리청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가 항생제 내성이 인류가 당면한 공중보건 위기라고 선언한 만큼 전 세계는 항생제 내성 예방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항생제 사용관리 프로그램(Antimicrobial Stewardship Program, 이하 ASP)의 지침이 공개된 이후 △미국 △스페인 △영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는 자국의 의료제도에 맞게 ASP를 시행하고 있다. ASP는 항균 범위가 넓은 광범위 항생제 등을 관리 항생제로 지정해 감염내과 전문의의 허가 없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항생제 처방 시 항생제의 종류 및 기간을 조언해 주는 등 항생제 사용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스페인의 한 대형 병원에서는 ASP 시행 이후 항생제 사용량이 27% 감소했을 뿐 아니라 1년 만에 항생제 부적정 처방이 53%에서 25.4%로 감소하며 ASP가 항생제 처방 및 내성균 감소에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적인 노력에 발맞춰 우리나라에서도 항생제 내성에 대응하고자 2016년부터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수립하여 ASP 도입 및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ASP를 운영할 감염내과 전문의가 부족하며 정부의 지원 또한 부족한 실정”이라며 “ASP를 시행하는 병원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ASP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국가 차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에는 치료가 까다로운 다제내성균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ASP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더 이상의 다제내성균 전파를 막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