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 대학교를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이것은 익명 편지라서 이름도, 학년도, 소속도 밝힐 수가 없네요. 하지만 전 이예나 씨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 이 편지를 다 읽고 나시면 제가 누군지 아실 것 같네요. 익명 편지를 쓰고자 하는 다른 아무개 학생이라면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를 다섯 번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다섯 장을 썼겠지만 전 바로 예나 씨가 떠올랐고, 그냥 쓰게 되었습니다.

 예나 씨는 처음 봤을 때부터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알아갈수록 더 재미있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제멋대로 굴면서 배려심이 넘치고, 순수하면서 거칠고, 겁쟁이면서 당당한, 그런 함께할 수 없는 조합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런 예나 씨가 그 모습 그대로 행복했으면 좋겠고, 가끔은 그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예나 님과 함께 할 때 저는 그냥 상상하는 일을 저질러 버리고,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한 일을 그냥 하게 됐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노선을 이탈했다는 공포가 아닌 해방의 자유를 느끼도록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 같습니다.

 제게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셨지요? 저도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것은 치기 가득한 이 시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든 함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든 예나 님과 함께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저희 세대는 지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인류가 멸망하리라 보는 극단적 비관론자는 아니지만, 제가 죽은 뒤 머지않아 멸망하리라 생각하긴 합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와 전쟁 뉴스가 자꾸만 들려올 때면, 제가 죽고 난 뒤 남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일 따위엔 좀처럼 관심이 안 생깁니다. 어차피 모두 사라질 테니까요. 다만 그저 서로에게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비록 저희가 함께 읽던 책에서는 한 노인이 결코 잊지 않겠다던 옛사랑의 이름을 끝내 잊어버렸지만, 그런 사랑이 있었다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저도 우리가 함께했고 함께 한 모든 일을 잊어버릴지언정 그 시간과 우정이 갖는 의미는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제가 가진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주시고 진심으로 대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지금 받은 진실한 격려는 제 삶 속에 잘 쌓여서 언젠가 제가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의 문턱에서 주저하는 순간에 빛을 발하겠지요. 함께하지 않아도 저를 도와주실 예나 씨, 부디 행복하세요. 이 편지를 발견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리고 이 편지를 읽는 오늘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4. 03. 03. 월.

누군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