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정학적 SF’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 수시로 찾아보고 있다. ‘아프리카 합중국 United States of Africa’라는 가상 개념도 이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됐다. 54개국으로 분할된 아프리카를 연방 국가로 통일하자는 아이디어인데, 1924년에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시 <Hail, United States of Africa>에서 처음 주창됐다. ​<Hail, United States of Africa>는 이렇게 끝나는 시다. ​

  만세, 아프리카 자유 합중국! / 용감한 흑인의 자유의 나라 / 더 큰 국가의 국가를 얻었다. / 흑인의 새로운 삶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합중국의 약자도 미합중국과 마찬가지로 USA이다. 이런 상상이 핍박받는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에 어떻게 와닿았을까? 마커스 가비의 이 시는, 문학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역사 투쟁의 선봉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밀레니엄의 첫 번째 10년이 끝나갈 때까지, 아프리카 합중국의 비전은 현실이 되기 어려웠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마커스 가비의 이름을 재소환한다. 2009년 2월에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53개국 아프리카 연합 의장으로 선출된다. 취임식에서 카다피는 아프리카를 단일 통화, 단일 여권, 단일한 군대로 묶자고 주장한다. 이를 ‘판아프리카나즘(Panafricanism)’이라고도 한다. 이 기획이 성공한다면 아프리카 합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나라가 되며, 인구 규모로도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가 된다. 하지만 카다피는 2년 뒤, 리비아 내전이 막바지에 다다랐던 2011년에 비참하게 살해된다.

  그 후로 아프리카 합중국 건설의 주장은 세네갈 대통령 압둘라예 웨이드에 의해 2017년에 다시 주장되긴 하지만, 이 인물도 카다피만큼이나 괴상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창하는 아프리카 합중국의 기획이 진도가 나갈 리 없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지부티 출신의 아프리칸 소설가인 압두라만 A. 와베리(Abdourahman A. Waberi)의 2006년 작 <아프리카 합중국 United States of Africa>는 마커스 가비의 시가 그대로 현실화한 다른 역사 속의 아프리카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선 남반구와 북반구의 운명이 당연하다는 듯 역전되어 있다. 아프리카만이 유일한 USA다. 서유럽은 빈민굴만 가득한 문명의 음지이고, 아프리카 합중국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극도로 번영한 최전성기에 있다. 유럽의 흰둥이들은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USA)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흰 피부의 그들은 어딜 가든 천대받고 가난은 대대손손 삶을 지배한다.​

  와베리 소설의 주인공 말라이카는 미래가 없는 저개발국가 프랑스 빈민굴에서 태어났다. 의료봉사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온 여의사가 고아였던 말라이카를 입양했고, 아프리카 합중국의 선진 문물의 혜택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다. 말라이카는 젊은 예술가로 성장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인종과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말라이카는 자신이 태어난 암흑의 땅 프랑스로 찾아갈 결심을 한다. 

  말라이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염상섭의 <만세전>을 생각나게 한다. 유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럽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 밖 현실의 아프리카를 역설적으로 또렷이 바라보게 한다. 발 닿는 곳마다 두 대륙 사이를 가로지르는 역사의 전환점이 발견된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통일, 연합, 연대의 상상력은 오히려 고갈되고 있다. <아프리카 합중국에서>의 대체 역사, 역전된 지정학의 상상력으로부터 우리 시대를 비판적으로 상대화시켜 볼 수 있겠다.
 

국어국문학과 임태훈 교수.
국어국문학과 임태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