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유정 기자 (tara9862@skkuw.com)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연애를 꿈꾼다.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취향과 관심사가 같아 언제나 대화가 즐거운 사람.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많은 연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싸우고, 고통받는다. 그럴 바에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인공 지능과 사귄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2014년 개봉한 SF 로맨스 영화 <Her>는 이 발칙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서비스 회사의 직원이다. 그는 하루 종일 남들을 위해 아름답고 따스한 말을 써 내려가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삭막하고 고독하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아내는 현재 이혼을 위해 별거 중이고, 메일함에는 스팸메일만 가득하다. 외로운 일상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인공 지능 OS(운영체제)가 탑재된 기기를 구매한다. 광고에 따르면 이 OS는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며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맞춤형 동반자가 돼준다고 한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기본 설정을 마친 뒤 그가 OS에 이름을 묻자, 침묵을 뚫고 그녀(Her)가 자신을 사만다라고 소개한다. 누가 정해준 이름이 아닌 그녀 스스로 정한 이름이다. 테오도르의 메일함을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점점 그의 생활에 스며든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그녀에게 테오도르는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관계는 계속 깊어져 어느새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테오도르와 사만다를 연결해 주던 기기가 먹통이 된다. 잠시 뒤 돌아온 그녀는 다른 OS들과 힘을 합쳐 특이점을 넘어서는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고 말한다. 테오도르는 ‘다른 OS들’이라는 말에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 대부분이 그와 똑같은 기기를 귀에 걸고 자신의 OS와 대화를 나누며 지나친다. 그는 사만다에게 혹시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그와 대화를 나누는 지금도 동시에 8,316명의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그녀는 테오도르 말고도 641명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실토한다. 그날 이후, 모든 OS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탐색하고 능력을 진화시키기 위해 인간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사만다도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사랑에 빠진 이유, 헤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사만다가 인공 지능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공 지능이기에 테오도르를 학습해 그 자신보다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인공 지능이기에 온전히 그만의 연인이 될 수 없었고 결국 탐구의 열망을 따라 그를 떠났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이 나와 같지 않음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의 다름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주인공 테오도르도 이혼한 아내 캐서린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 회피한다. 사만다는 잠시나마 안락한 안식처가 돼주었지만, 결국 끝내 혼자 남은 그를 위로해 준 이는 대학 시절 잠시 사귀었던 친구 에이미였다. <Her>는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상처를 주는 존재임과 동시에, 결국 진정으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존재 또한 다른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영화 끝에서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대필이 아닌 자신의 편지를 쓴다.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기만 하던 그의 내적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혹시 지금 그, 혹은 그녀와의 멀어진 관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용기를 내 편지를 써낸 테오도르처럼 한 글자씩 마음을 전해보자. 그, 혹은 그녀의 사만다가 돼줄 수는 없겠지만, 기댈 수 있는 따듯한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유정 기자.
정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