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희 편집장 (gahee@skkuw.com)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던가. 첫 기사로 ‘정부의 노동개혁’을 소재로 한 사회부 기획기사를 발간했다. 고백하건대, 세상을 바꾸겠다는 고귀한 사명으로 쓴 기사는 아니었다. 기성언론도 아닌 어느 대학의 언론사에 갓 입사한 신입 기자가 명쾌하게 다루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였으며, 원고지 20매 분량 남짓의 기사로 세상을 바꿀 리도 만무했다. 첫 기사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기계적으로 썼던 것은 아니지만 글자 하나하나마다 진심을 담았냐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없다.

해당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기사 전반에서 노동개혁 정책의 전망을 비추다가 마지막 문단에 가서는 노조의 필요성을 논했다. 노조의 기본적인 원리는 노동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며, 노조의 힘이 약화하면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인터뷰에 응하셨던 교수님의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노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막아주는 안전장치 같은 역할이다.’ 이 말을 계기로 필자의 머릿속에는 노조의 명확한 존재 이유가 확립됐다.

한편 지난 4일 SPC 그룹의 대표가 구속됐다. 혐의는 사내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SPC 그룹이 노조를 탄압했다는 의혹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노조 탈퇴서를 종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파문을 일으켰다. 노조 측에 따르면 사측이 조합원들로부터 노조 탈퇴서를 받아온 관리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조직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이들이 지급했다는 포상금은 탈퇴서 한 장당 단돈 만 원이었다.

노동자의 권리가 만 원에 팔린다.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장치가 언제부터 거래의 대상이 됐나. 설령 사측의 직접적인 혐의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로 이어졌다는 것 자체가 가히 놀랄만하다. 자본주의의 원리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노동은 돈으로 살 수 있으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권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노동자의 권리가 만 원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시대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을까. 노조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언제 오는가. 이러한 순간이 도래하지 않는 한 노조의 사회적 행동은 필히 이어져야 한다. 때로는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 원에 안전장치를 빼앗긴 이들을 생각하면 단지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뿐이다. 

하나의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은 없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회 귀퉁이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기성언론도 아닌 어느 대학의 언론사에서, 아직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다시 전한다. 이들의 권리가 단돈 만 원으로 취급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김가희 편집장.
김가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