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스코틀랜드는 인구 약 550만 명의 작은 국가이다. 영국 본섬의 일원이지만, 아무래도 그 섬의 중심은 잉글랜드인 탓에 우리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는 유럽 지성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은 다양한 지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유럽 계몽주의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이는 수도 에든버러가 “북구의 아테네”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가졌던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세상 그 어느 곳도 에든버러와 경쟁할 수 없다. 잉글랜드와 미국의 대학들은 그 다음 자리에 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당시 스코틀랜드가 이처럼 앞서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스코틀랜드의 대학들에 주목하고 싶다. 18세기 말까지 잉글랜드에는 2개의 대학만 있었지만, 스코틀랜드에는 무려 5개의 대학이 있었다. 그만큼 학문이 널리 장려되었고, 지적인 활동과 성취에 대한 존중이 컸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부러워했을 만큼 교수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대학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대학은 어떤 곳인지를 늘 되묻게 된다. 세상의 대학이 다 똑같지는 않지만, 널리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다. ‘진리탐구’와 ‘자유정신’이 그것이다. 이는 많은 대학의 교훈에도 담겨 있다. 하버드대(veritas, 진리), 예일대(lux et veritas, 빛과 진리), 스탠포드대(Die Luft der Freiheit weht, 자유의 바람이 분다), 서울대(veritas lux mea, 진리는 나의 빛), 연세대(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려대(libertas justitia veritas, 자유 정의 진리) 등 거론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표현의 결은 다르지만, 우리의 ‘인의예지’도 대학이라는 맥락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으로 진리탐구에 전념할 수 있는 곳, 그런 축복된 공간이 대학이다.

신입생을 맞이한 3월의 캠퍼스는 북적이고 활기차다. 이런 교정을 거닐 때면, 1996년 3월 새로운 대학 4년의 설렘과 기대로 들떠있던 나의 새내기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종종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우선, 수년 내에 삼성라이온즈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할 것이며, ‘그깟 공놀이’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로 웃으며 시작할 것이다. 이어서, 대학에 소속된 자의 행복에 관하여 상기시켜주고 싶다.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를 흠뻑 느끼고 만끽하라고, 진정 자유로운 자의 특권으로서 세상이 당연하다고 규정하는 모든 것들을 한번 의심해 보라고 말해줄 것이다. 

또한 간곡한 목소리로, 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하고 싶다. 당장은 영원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Tempus fugit). 일찍이 공자님도 ‘少年易老學難成’임을 탄식하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앎’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알려고 하라.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쓰고 보니 이 말들은 현재의 나에게도 유의미함을 깨닫는다. ‘그깟 공놀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여전하니 말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