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예본 부편집장 (nobey@skkuw.com)

여기 죽어가는 노작가가 하나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수십 년 넘게 자택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작가 프레텍스타 타슈다. 타슈는 속칭 연골암이라 불리는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에 걸려 살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전 세계의 기자들은 죽음을 앞둔 대문호를 인터뷰하기 위해 새떼처럼 몰려든다. 타슈는 그중 극소수를 엄선해 자신과 인터뷰할 기회를 하사한다. 기자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은 타슈가 지독한 인간 혐오자라는 사실이다. 허위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는 타슈는 문학과 독자, 나아가 인간의 허위를 낱낱이 들추며 기자들에게 모욕을 준다.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은 타슈와 기자들 사이에 오가는 날카로운 대화를 따라가며 쉴 틈 없이 전개된다.

타슈에 따르면 아름답고 따뜻한 문학은 작가의 사심으로 점철돼 있다. 사심 없는 친절의 본질이란 알아보기 힘들거나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순수한 선의를 담은 책은 오히려 고독과 비천함 속에서 탄생한다며, 그는 지독한 소설을 쓰는 자신이 더없이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독자들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인간 개구리처럼 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책의 강을 건너’고, ‘잠수복을 갖춰 입은 채 유혈이 낭자한 문장 사이를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독자들. 사람들은 책을 읽고도 털끝 하나의 변화도 없다. 말장난처럼 독서의 목적은 독서하는 행위 그 자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는 진정한 독자도, 독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치관 아래 그는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자신이 쓴 책을 그 누구도 진정으로 읽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과거 저지른 살인을 그대로 소설로 펴내는 것이다. 그의 역작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살인자의 건강법>이다. 타슈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 열광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메타포를 찬양한다. 그는 허위를 한번 꼬아 진실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믿도록 꾸민다.

<살인자의 건강법>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허위투성이다. 심지어 허위를 끔찍하게 혐오하는 주인공 프레텍스타 타슈까지도. 그는 자신의 연인이자 사촌누이인 레오폴딘을 목 졸라 살해했지만, 그녀가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했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세상의 허위가 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을 테니 분명 기쁘게 죽음을 맞아들였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타슈가 인간의 허위를 비판한 대목이 떠오른다.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지. 허위적이라는 건 우선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타슈의 허위는 그의 시선에서 더없이 순수한 것일지 모르나, 그 허위는 타인은 물론 타슈 자신까지 속여버렸다.

우리는 타슈가 말하는 방식대로 진실될 필요는 없다. 책을 읽기 위해, 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위해 잠수복을 벗어 던질 필요도 없다. 그의 뜻대로 허위를 벗어던진 순수함은 소설에서 극단적이고 무참한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사회에서 고도의 순수함, 타슈식 친절함이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다만 우리는 일상에 스며든 허위를 하나씩 되짚어볼 수는 있겠다. 사기 위해 사고, 웃기 위해 웃고, 읽기 위해 읽는, 순환하는 허위의 굴레에 빠져 목적 없는 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껍데기뿐인 허위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우리를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예본 부편집장
정예본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