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지빈 기자 (zibini930@skkuw.com)

고생물의 모습과 생활 습관까지 알 수 있는 화석

관련 연구를 위한 환경이 뒷받침돼야

1824년 최초로 발견된 화석인 메갈로사우루스의 화석이 영국에서 발굴된 후 200년이 지난 지금, 화석 연구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발자국 화석산지를 보유해 관련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수억만 년 전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화석 덕분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보낸 편지인 화석,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화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화석은 자연적으로 생긴 과거 생물의 유해나 흔적이 남은 것으로, 그 범위를 최초의 생물이 생겨난 약 38억 년 전부터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시점인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인 지질시대 생물의 것으로 국한한다. 화석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유해나 흔적이 퇴적물에 빠르게 둘러싸여 외부의 산소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소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호기성 박테리아에 의해 부패하거나 지하수 혹은 지표수에 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의 사체는 보통 퇴적물 속 미생물 등에 의해 분해돼 피부와 같이 연한 조직은 사라진다. 따라서 어떠한 훼손도 없이 현대까지 보존된 경우는 매우 드물며 일반적으로 뼈와 같이 단단해 쉽게 훼손되지 않는 경질부가 있어야 오랜 시간 화석으로 남기 쉽다. 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 박진영 박사는 “퇴적물의 종류에 따라 화석의 보존된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며 “모래알같이 거친 퇴적물의 경우 훼손이 쉬워 뼈만 남는 경우가 많고 진흙같이 고운 퇴적물 속 화석은 피부결까지 자세히 남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생물의 유일한 흔적인 화석
화석은 먼 과거 생물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라는 점에서 연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융남 교수는 “화석은 지구에 인간 이전의 생물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화석을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생물의 진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오늘날의 생물이 되기까지의 진화 과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같은 종류의 화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구하는 것이다. 박 박사는 “원시 공룡의 둥지 화석은 형태가 불규칙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둥지 화석의 형태가 둥글어졌다”며 “새가 알을 품기 위해 알을 둥글게 모은다는 특징을 미뤄보아 공룡이 새로 진화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발자국이나 배설물과 같이 고생물이 생활한 흔적이 남은 생흔화석을 통해 고생물의 생활 습관과 같은 생태를 알아낼 수 있기도 하다. 일례로 2022년 전라남도 화순군 서유리에서 발견된 350여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익룡 발자국 화석은 크고 작은 익룡들이 모여 살았음을 최초로 증명해냈다. 이전까지 익룡의 군집 생활은 추정만 가능했고 이를 증명해 줄 직접적인 화석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연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는 발견이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서유리의 발자국 화석산지. ⓒ한국대학신문캡처
전라남도 화순군 서유리의 발자국 화석산지. ⓒ한국대학신문캡처

 

화석 연구는 생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지질시대를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진 지질시대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되는데 이때 각 시기는 표준화석에 의해 구분된다. 표준화석은 특정 시기 동안 넓은 범위에 걸쳐 서식해 특정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화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커다란 벌레처럼 생긴 해양 절지동물 삼엽충은 약 5억 4,000만 년 전부터 2억 3,000만 년 전 사이의 지층에서만 발견됐고 분포 범위가 넓어 고생대를 정의하는 표준화석으로 지정됐다. 즉 삼엽충이 발견된 지층은 고생대의 지층임을 뜻하며, 같은 이유로 암모나이트와 화폐석 역시 각각 중생대와 신생대를 구분 짓는 표준화석이 됐다. 

시대별 표준화석(왼쪽부터 삼엽충, 암모나이트, 화폐석). ⓒ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시대별 표준화석(왼쪽부터 삼엽충, 암모나이트, 화폐석). ⓒ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과거 기후를 분석해 미래에 대비하다
한편 화석을 통한 지질시대 기후 연구는 오늘날의 기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파나 폭염 등의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히 일어나는 오늘날에는 지구의 기후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만 약 150년 정도의 현대 기후 자료로는 변화 양상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워 고기후 연구가 그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의 기후 현상이 과거부터 패턴처럼 일어나는 현상인지, 랜덤하게 일어나는 현상인지 알 수 없으니 지질시대의 기후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화석을 통한 고기후 연구의 대부분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은 미생물의 화석인 미화석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박 박사는 “미생물은 성체가 되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세대교체와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미생물은 환경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기 때문에 고기후 연구에 비교적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미화석 활용 연구 방법은 동일 종 내에서도 온도 차이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기후 지시종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교수는 “대표적 기후 지시종인 유공충은 온도가 높을수록 오른쪽으로 말린 모습이며 낮을수록 왼쪽으로 말려있다는 특징이 있어 말린 방향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따라 당시 기온 변화를 추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미화석 활용 연구 방법으로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난류 종과 추운 곳에서 자라는 한류 종의 분포 비율 변화를 조사하는 군집 연구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빙하기가 존재한 고생대 지층의 경우 난류 종보다 한류 종의 비율이 높은데 이는 당시 기후가 매우 추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층에 따른 특정 종의 비율 변화를 연구해 고기후를 추측할 수 있다.
 

앞으로의 국내 고생물학 연구를 위해
지질시대 생물의 형태 및 생활 습관과 기후를 알아냄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다. 박 박사는 “고생물이 멸종했듯 지금의 생물들도 언젠가 멸종할 수 있다”며 “환경 변화에 따른 생물의 변화를 연구해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해 현세대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화석 연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화석 훼손을 방지할 방안에 대해서도 활발히 논의 중이다. 국내 주요 화석 분포지인 남해안의 경우, 파도나 바람 등 자연적 요인으로 인해 발자국 화석이 훼손되고 있으나 훼손 자체를 막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21년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학생들은 사진 측량법을 이용해 화석을 데이터의 형태로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진 측량법은 하나의 대상을 다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이용해 실제 대상의 형태로 구현하며, 이를 3D 데이터로 저장하는 방법이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대상의 외형이 왜곡될 수 있기에 여러 장의 사진을 이용해 실제에 가까운 복원을 하는 것이다. 해당 방안을 통해 풍화되는 화석을 데이터로써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또한 육안으로는 알 수 없던 발자국의 형태 및 패임의 정도를 더욱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표현할 수 있어 화석 연구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고생물학이 더 큰 도약을 이루기에는 연구 환경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고생물학의 학문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관련 학과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이 교수는 “대학은 실적을 내야하므로 순수학문보다 응용학문에 치중하는 편”이라며 “고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많으나 이를 뒷받침할 학습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고생물학 연구만큼 중요한 것이 자연사박물관의 진흥이다. 자연사박물관은 화석을 비롯한 연구 자료를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과학자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종합자연과학 연구기관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자연사박물관은 전문가가 아닌 행정 인력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외국의 유명한 자연사박물관은 박물관 내 전문 연구원 수가 대학 내 연구원 수보다 많은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문 학예사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사적으로 박물관 관련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아직 발견되지 못하고 숨겨진 수많은 화석을 발굴하고 연구해 낼 수 있도록 연구 환경의 개선 또한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