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 '이야기 동양 신화'와 '살아있는 신화'

기자명 박진희 기자 (puregirl@skku.edu)
"신화란 미래를 품고 있는 과거이며, 현재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시킨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넘실대는 파도를 헤치고 인어공주가 나올 것만 같은 환상, 화사한 꽃잎 사이로 작은 요정들이 속삭일 듯 한 착각에 빠진 어린 시절이 있다. 그 꿈만 같던 시절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한 상상의 세계였다. 신화란 바로 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한다. 쉽게 말해 세상을 만든 신들과 우리의 옛 선조들에 관한 옛 이야기가 바로 신화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화를 그저 옛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신화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질서와 그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 맡고 있는 역할을 이해하려는 간절한 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제우스나 헤라, 아프로디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신들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와 같이 서양의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많은 반면 동양의 신화적 상상력은 암울하기만 하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반기를 든 『이야기 동양 신화』와 세계 신화의 내면에 담긴 의미에 주목한 『살아있는 신화』를 통해 우리 삶의 진실을 들여다보자.

드디어 눈을 뜬 동양 신화
「이야기 동양신화」는 ‘산해경 역주’, ‘불사의 신화와 사상’ 등을 내며 일찍이 동아시아 신화연구에 몰두해온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가 쓴 동양의 신화서이다. 눈, 코, 입, 귀 등 얼굴이 하나도 없는 혼돈의 신 ‘제강’, 1만 8천 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거인 ‘반고’, 인류를 창조한 최초의 여신 ‘여와’, 사랑의 여신 ‘무산신녀’, 불굴의 영웅 ‘치우’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동양의 신들에 대한 흥미있는 이야기로 책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또한 동양의 신화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 분석을 통해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얼굴은 소의 형상을 하고 있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한 동양의 소 머리 신 ‘염제’, 갖가지 괴물을 퇴치하는 등 난제를 해결한 헤라클레스와 비교되는 천하의 영웅 ‘예’ 등 동양의 신들과 마주하게 되면 잠들어 있다 되살아난 동양 신들의 패기와 열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돋보기로 들여다 본 세계 각국의 신화
온갖 상상력의 온상인 동양 신화의 매력에 빠져있었다면 잠시 눈을 돌려 세계 각국의 신화에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의 유사 신화’로 우리에게 얼굴을 알린 미국의 신화학자 J. F. 비얼레인이 쓴 「살아있는 신화」는 세계 각국의 신화에 담겨진 의미와 상징들을 친절히 해석해준다. 단지 신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신화가 인간의 실존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라는 더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 남녀간의 사랑, 자연과 인간 본성, 영웅 신화, 창건 신화라는 5가지 범주로 세계 각국의 신화를 나누어 들여다보기라는 소제목으로 각각의 신화에 대한 깊은 의미를 고찰한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다룬 노르웨이의 토르와 오딘 이야기,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 인도의 날라와 다마얀티 이야기, 아일랜드의 영웅 쿠쿨레인 이야기 등은 세계 각국의 신화의 웅장함과 더불어 신화 속에 내재된 삶의 진리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전 인류에 살아 숨쉬는 신화
미국의 저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인종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정신구조상 동일한 신화적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주목했다면 그것만이 신화를 대표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동양 신화, 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의 신화와 그 속에 내재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모두는 신화 속 영웅들이 가진 세상의 온갖 보물보다 더 값진 인류의 아름다운 유산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