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기자명 함초아 기자 (choa84@skku.edu)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킷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난 경험으로 그걸 배웠거든."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中 -


우리의 삶은 상실로 가득 차 있다. 어렸을 적 꿈꾸던 소망을 잃고, 공기같이 늘 존재했던 가족을 잃고, 내 곁에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연인을 잃으며 끝내는 추억으로 변해버린 그 모든 기억들을 잊는다. 미도리는 어머니를 잃고 말기 암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던 아버지마저 잃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지만 세상을 다 살아본 노인처럼 말하는 스무살 미도리가 때론 애처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오코의 정말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이었지만 자살하는 기즈키,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끝내 삶을 포기하는 나오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나가사와 선배의 여자친구 하쓰미까지.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삶의 전부라고 느꼈던 무언가, 그 무언가를 잃었을 때 삶을 포기한다.

이런 삶의 아픔들 속에서, 끝내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그리고 미도리는 되뇌인다. 좋아하지 않는 비스킷을 먼저 먹어버리는 거라고. 이 일만 겪으면 이런 아픔은 이제 없을 거라고. 이제는 행복이 올 차례니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비스킷 통에 아직 남아있는 좋아하는 비스킷을 보지 못한 것일까. 아직 남아있는 비스킷이 바로 연인과의 죽을 것만 같았던 이별 후에, 정말 소중한 피붙이를 잃는 슬픔 후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고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뼈저리게 슬픈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깊은 슬픔이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때쯤엔, 포기하지 않은 삶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