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스케치]

기자명 이곤미 기자 (luckygm@skku.edu)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여기 죽어서야 비로소 뼛속까지 사무친 한을 이야기하는 가련한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잠시 한때 조선의 국모로 조정의 암투, 그 어두운 역사의 뒤편에서 모진 삶을 살다간 인물이자 연극 <영영이별 영 이별>의 주인공인 정순왕후.

지난 24일 막을 올린 <영영이별 영 이별>은 제1회 세계 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을 연극화 한 작품으로, 막 생을 마친 정순왕후의 혼령이 먼저 간 남편 단종에게 애달픈 지난 삶을 털어놓는 1인극 형식의 모노드라마다.

열다섯 나이에 어린 단종과의 정략결혼 후, 2년이 채 못돼 남편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 가 사사당하기까지. 왕비에서 대비로, 서인에서 걸인, 날품팔이꾼으로 전락한 그녀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세월을 65년이나 더 살아낸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끈질기게 살아남는가'라며 자진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그녀가 기어이 여든 두해의 긴 생을 ‘살아내게'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원망과 한에 의한 독기라기보다도 위태로운 상황이었기에 어떤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보다 더 절실히 사랑했던 부부의 연, 그 애틋한 추억이다.

각종 어록이 유행하는 요즘, 정갈하고도 아름다운 이 연극의 대사는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여기에 배우 윤석화. 배우는 많되 스타는 없다는 연극계에서 스타 윤석화는 역사 속 비련의 여인 정순왕후를 완연히 소화해낸다. 모노드라마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배웠다는 공연 중간중간의 시조와 살풀이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네의 한의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훌쩍임과 연극이 끝난 후의 기립 박수는 배우 윤석화에게 보내는 것인지, 정순왕후의 가련하고도 애절한 삶과 사랑에 대한 것인지.
“당신, 나를 다시 만나면 칭찬해 주셔요. 왜 이제야 왔냐고 탓하지 마시고 그동안 수고했다, 애썼다 다독다독 어깨를 두들겨 주셔요. 나는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수는 없을지언정 모진 목숨을 이만큼이나 오래 살아내고야 만 것이, 결국 내게 허락된 유일한 복수였으니까요”

이 원작의 모티브가 됐다는 청계천 영도교(永渡橋).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했다하여 ‘영영이별다리',  '영이별교'라고 불렸다는 이 다리를 이제 건넌다면 오백년 전 이 곳, 그들의 안타까운 이별이 생각나 가슴이 저릿해질 것만 같다.

△기간: ~2월 16일
△장소: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
△관람료:학생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