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취재대상인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취재원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가면되죠?”라고 물어봤다. 취재원은 자신이 긍지를 가지고 지켜내려 하는 곳인 서대문형무소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기자는 또 나름대로 역사학도를 꿈꾸고 있는 까닭에 취재원의 서운한 말을 듣자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취재대상으로 삼았으면서 그 정도도 몰랐다는 사실이 더욱 부끄러웠다.
또 한가지, 취재원은 서대문형무소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동안 다른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한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그의 이름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지만 기억해서 손해보지 않을 이름이다. 그는 일본인 변호사였고 일제시대 사람이었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도와줬다. 한 조선독립운동가를 변호하기 위해 그는 동경(東京)에서 자비를 들여 조선으로 오곤 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활동 때문에 일본정부의 미움을 받았었다. 때문에 평화를 외친 자신의 셋째 아들을 잃고, 자신과 의견이 맞지않는 첫째 아들과 의절했다. 셋째 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아들이 침략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죽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후세 변호사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너무 쉽게 정보, 지식을 찾을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어쩌면 그런 것들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대문 형무소에 가는 길도, 후세 다쓰지도 모른다해도 필요할 때 찾아서 알면 되니까. 옛말에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지만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것은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임진아 기자 kredo@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