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주민으로 보낸 하루

기자명 박소영 기자 (zziccu@skku.edu)

대추리의 첫인상은 미군기지와 집과 논이 뒤섞인 기묘한 공간이었다. 대추리에 도착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제수용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쓰인 노란색 깃발들 때문이었다. 수용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지만 대추리에서의 수용은 ‘공익을 위해 국가의 명령으로 특정물의 권리나 소유권을 강제 징수해 국가나 제삼자의 소유로 옮기는 처분’이라는 단 한 가지 의미로만 쓰인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에는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용산과 동두천, 의정부에 있는 미군기지가 옮겨올 예정이다. 현재 평택에는 4백57만여 평의 미군기지가 있고 3백49만 평이 편입될 상황에 놓여있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은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어느 곳이든 필요에 따라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고 평택을 이를 위한 영구기지로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작년 12월 22일부터 국방부는 대추리 땅의 소유권을 이전해갔고 협의 매수된 땅과 집에 대한 출입도 금지했다. 이에 대항하는 대추리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투쟁도 오랫동안 진행돼 오고 있다.

   
윤재홍 기자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대추분교 앞에서 버스가 섰다. 길가에는 ‘3차 평화대행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미군은 떠나라/대추리는 우리 땅’등의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들이 나부꼈다. 담장에는 초록빛 물감으로 그린 푸른 잎사귀들과 평화로운 마을을 그린 벽화들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숙소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마리아씨의 안내를 받아 ‘지킴이네’에 도착했다. ‘지킴이네’는 1일 대추리 주민으로 팽성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빈집에 마련된 임시숙소이며 1일 대추리 주민되기는 국방부와의 협의 매수로 인해 주민들이 이사를 가면서 점점 늘어가는 빈집을 사람으로 채우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대추리의 1백40여 가구 중 벌써 30여 가구 이상이 이사를 가 부서진 빈집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광활한 논이 펼쳐진 대추리는 전체적으로 황량한 분위기였다. 대추리 주민들은 토지의 강제수용으로 인해 영농행위 자체가 불법이 돼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이를 어길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7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사항은 주민이 떠난 빈집과 ‘지킴이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수시로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군기지의 헬기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윤재홍 기자

매일 저녁 7시부터는 대추분교 운동장에 마련된 비닐하우스에서 촛불집회가 진행된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이미 일상이 돼버린 한 할머니는 “저녁 먹고 나면 무조건 집회에 가지”라며 대추분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7시 ‘547일째 우리 땅 지키기 촛불문화행사’가 시작될 즈음 70여명의 주민들이 비닐하우스 안을 가득 채웠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찬 선창 소리에 맞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구호를 따라 외치며 환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치켜들었다. 무대로 나온 평화바람 문정현 신부는 “우리들에게 땅을 내 놓고 나가라는 정부는 의미가 없습니다”라며 “대추리 뿐만 아니라 도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한을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라고 정부를 성토했다.

주민들은 연사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치기도 하며 더없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했다. 연사들은 이 촛불집회가 단순히 ‘내 땅을 찾기 위한 항의의 목소리 내기’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FTA와 같은 세계화 문제를 설명하고 주한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도 반세계화, 평화 운동의 한 맥락으로 이해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팽성대책위 장도정 홍보부장은 “처음에는 관망하는 모습을 보인 주민들이 매일 거듭된 촛불집회 덕분으로 갈수록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죠”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제는 미군은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만큼 의식이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중간에는 1일 대추리 주민되기 행사에 참여하는 손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외부에서 대추리의 실상을 알고 함께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추리 주민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될 터였다. 8시가 되자 한 시간을 이어온 촛불집회가 끝났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다.

   
윤재홍 기자
마리아 씨는 대추리에서 진행되는 1일 대추리 주민되기나 촛불문화행사는 사람들의 연대 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사를 가면 집에 계고장이 붙고 논에도 플래카드가 걸려 들어가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결국 농사를 짓는 것도, 이곳에 사는 것도 투쟁이죠” 이어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봄이 되면 농사지을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요. 학생들이 최대한 많이 봄 농활에 참여해서 투쟁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대추리 마을의 집집마다 대문에 ‘立春大吉’과 함께 붙은 글귀는 ‘올해도 농사짓자’이다. 3월 1일자 평택시민신문에는 국방부가 이번 달 6, 7일 즈음 논에 철조망을 설치해 주민의 출입을 막을 것이라는 머릿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대추리 사람들은 5일부터 국방부에 맞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 촛불집회 참석자의 발언이 귓가에 생생하다. “무기를 녹여서 농기구를 만들어야 할 판에 정부는 그 반대로 농기구를 녹여 무기를 만들려 합니다” 농기구를 녹여 무기를 만드는 땅에 진정 평화가 올 날은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