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과 공동 코뮈니케 발표는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곧 해빙시켜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곧 이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등장은 북·미 관계의 진행 방향을 역류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대외정책을 표방하고 나왔고, 이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미관계의 후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물살을 타던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으며, 한미간 대북정책의 혼선을 초래함으로써 한미관계마저 삐걱거리게 했다.
더욱이 지난 1월 말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대 테러 차원에서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발언은 북한당국을 크게 자극함으로써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을 한층 어둡게 했다. 이 발언은 남북관계 개선을 간절히 기대하던 한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으며, 우리 사회내에 전쟁 우려와 함께 반미 목소리와 ‘남남갈등’을 크게 고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2월 부시 대통령의 방한은 한미간 대북정책의 조율을 통해 행여나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털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정상회담에 이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대화를 강조하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해 일단 전쟁 우려를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악의 축’ 발언과 관련, 이는 “북한정권과 지도자들을 겨냥한 것이지 북한 주민들을 향한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김정일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부시의 부정적 대북관은 수령 중심의 북한을 크게 자극, “부시의 망언은 우리와의 대화 부정 선언”이라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논평에서 확인되듯이 북미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또한 싫든 좋든 북한당국을 대화 파트너로 삼아 체제변화를 유도하려는 김대중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으며, 남한내 진보층의 반발을 사 ‘남남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팠다.
불행히도, 북한이 미국에 의한 체제생존 보장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은 북미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역전시키는 일은 우리 정부의 몫도 크지만, 북한도 진정 자주통일을 원한다면, 우리의 대미 ‘종속성’만을 탓하기보다는 남한당국과의 대화에 먼저 나서야 한다. 그것이 ‘불량국가’의 이미지를 벗기고 대미관계를 개선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뒤집어 생각할 때 해답이 나오는 법이다.  
오일환(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