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재수는 기본, 삼수는 선택. 입시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돌 만큼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1년 더 공부하는 일이 흔해진 요즘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대학 신입생 3명 중 1명은 재수생이라고 해요. 이렇듯 그 숫자가 워낙 많다보니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재수생들이 끼리끼리 모이거나 현역들이 재수생을 따돌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은근히 인간관계에서 오는 심적 부담이 적지 않다고 재수생들은 고백합니다.

그들이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양할 겁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가장 큰 원인을 꼽는다면 바로 ‘동기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아닐까요? 대학에 들어오고 소모임이나 학회, 동아리 등 수많은 집단에 속하면서 어떤 곳에서는 ‘형’ 대접을 받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너’ 취급을 당하게 되는 거죠. 호칭을 정하는 기준은 학교마다, 또 학과마다 달라서 “당연히 재수까진 반말”이라고 선포되는 곳부터 “그런 건 알아서 해라”라고 방관하는 곳까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재수생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현역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호칭이 ‘너’로 굳어지는 일도 발생해 재수생의 신경을 긁기도 하죠.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문제에요. 그랬다가는 나이 먹었다고 대우 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재수생을 ‘너’로 부르는 분위기는 대개 선배들의 강요에 의해 형성돼 왔습니다. 이는 기수 체계가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군대문화의 영향이 큽니다. 자기보다 한 기수 높은 사람에게도 절대복종하는 생활을 하다가 복학한 예비역 선배의 눈에 신입생 동기들 사이에서 형, 누나 소리가 나오는 것이 곱게 보일 리 없죠. 그리고 이는 재수생들의 자존심에 대한 공격이 됩니다. 나이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유교문화 속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한 살이나 어린 동생들과 반말을 하며 지내라니요. 결국 군대문화와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대학사회의 특성이 재수생들에게 이러한 시련을 가져다 준 겁니다.

그리하여 공자의 후예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현역 군인인 재수생들은 오늘도 ‘형’과 ‘너’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에요. 곧 군대에 가서 짬밥도 먹고 연병장에서 몇 바퀴 구르다 보면 어느새 기수 체계의 절대성에 익숙해져버린 ‘예비군’이 돼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시비가 붙으면 “너 몇 살이야”라는 말부터 먼저 나오는 철저한 유교문화권 사회 속에서 1년이라도 더 늙은 것에 따른 이득을 보고 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