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여성문제에 대한 문학적 고찰

기자명 최지영 기자 (kekekel@skku.edu)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외로운 밤, 님을 그리는 연모의 정을 풀어낸 황진이의 시조다. 이 시조는 전통적 여성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이처럼 흔히 여성성이라고 불리는,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문체로 표현된 문학을 여성문학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황진이의 시조를 여성문학이라고 이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앞선 것들은 여성문학이 아닌 여류문학으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 여성문학동인 ‘살류쥬’의 장정임 동인은 “여류라는 단어에는 ‘여자니까 그렇지 뭐’하는 여성의 한계를 인식하는 사회의 관점이 담겨있다”며 여류문학과 여성문학이 다름을 지적했다.

여성문학, 그 정체성을 찾아서
이처럼 여성문학은 여류문학과는 다르게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현실과 역사를 자각하는 문학이다. 간단히 말해 여성주의문학의 줄임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문학의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논란이 오가고 있다. 우선, 여성문학의 작가는 여성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답은 ‘아니오’다. 사회 모순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작가의 성을 불문하고 여성문학이라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장 동인은 “남성과 여성이 삶의 경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여성만이 그들의 현실에 대해 감성 있게 느끼고 절절한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다”며 여성문학의 작가 대부분이 여성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논란이 일고 있는 다른 부분은 ‘여성문학’이라는 용어 사용이 과연 정당한 지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남성문학’이라는 범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문학을 따로 구분 짓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 동인은 “아직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비주류”라며 여성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여성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대적 흐름 속의 여성문학
이와 같은 여성문학이 우리나라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근대성이 화두로 떠오른 1920년대부터다. 그 당시에는 신여성문학 담론이 대두됐다. 이는 자유연애를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희생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한편 50·60년에 이르러서는 나라 전체가 전쟁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된다. 이 때는 가혹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낭만적 로맨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 흐름은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전통적 여성상을 제시해 여성문학사에서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에 여성문학은 다양성을 차단하던 군사정권을 거치며 계속되는 암흑의 시기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러 차차 자율성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여성문학계에서도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일례로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가 발표돼 전체 문학계에 큰 획을 그었고,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처럼 여성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작품도 대거 등장해 여성문학계를 풍성하게 했다.

미래로의 조심스런 발걸음
그러나 이처럼 여성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에 대한 한계점도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여성작가에 의한 많은 문학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과연 그들이 삶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작품을 쓰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첫째다.

또한 문학권력이 아직도 남성에게 편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와 관련 장 동인은 “메이저급 출판사의 관계자 및 평론가들은 거의 남성”이라며 문학계에서 여성문학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꼬집었다.

그렇다면 여성문학이 이러한 한계를 딛고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여성문학의 출발점을 되돌아보면, 이는 여성의 권리를 되찾고 여성 스스로의 주체적 삶을 정립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었다. 따라서 여성문학이 자신의 색깔을 찾고 문학계에서 당당히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장 동인은 “앞으로의 여성문학은 소수자와 제3세계의 삶과 함께 가야 한다”며 “문화적 권력을 갖지 못한 비주류의 입장에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혀 이를 토대로 방향성을 정립해야함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