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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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대신문
  • 승인 2006.12.05 00:00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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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선작 - 전지은(사학03)
정은이가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은 6개월 전의 어느 날부터이다. 그 다음날 인터뷰를 위해서 원고를 읽으며 준비하던 중이었다. 준비된 인터뷰는 「경영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물학적 특이성 계발방법」이라는 책을 쓴 김재영 교수를 만나서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은이는 그 책 제목조차 읽지 못했다. 처음에 나는 정은이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은이는 꽤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이 없었다.
“왜 그래?”
나는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이상해요, 언니. 저 요즘 발음이 안 되는 문장이 꽤 많거든요”
“발음이 안 되다니?”
“잘 모르겠어요. 어떤 특정단어는 발음이 잘 안돼요”
정은이의 표정은 장난으로 보이지 않았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마치 상한 우유라도 마신 사람처럼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럴 때 일수록 언니다운 자세로 의젓하게 충고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다지 충고해 줄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책이 없다. 사람들은 살다보면 가끔 뭔가 발음이 안 될 때도 있고 그런 것 아닐까. 몸이 피곤해서 혹은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서 발음이 헛도는 경우는 누구나 한번쯤 있지 않은가.
“그래? 요즘 너무 무리한 거 아니니? 방송국 시험이다 뭐다 준비할 게 많아서 마음 부담이 심한 거 아니야?”
“그래서 그런걸까요? 어쨌든 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큰일이에요. 너무 걱정되고 힘들어요”
방송국 입사시험을 얼마 앞두지 않은 정은이는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비록 조그마한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 근무하고 있지만 공중파 TV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꿈인 정은이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앞두고 지나치게 연습하고 신경을 쓰는 것 때문에 발음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연습하고 있잖아.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럴 수 도 있어”
그런걸까요하고 대답하면서 정은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 정도 답변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하기도 해서 나는 조금 더 책임감을 느꼈다.
“그럼 내 앞에서 뭐라고 하나 읽어볼래? 같이 읽으면서 문제점을 찾아보자”
나는 옆에 쌓인 다른 방송의 원고 더미에서 읽을 만한 것을 주섬주섬 찾아보았다.
“이걸 한 번 읽어봐”
정은이는 원고를 쭉 눈으로 훑더니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고 읽기 시작했다.
“인기가수 오인영씨가 10월 29일 자정 무렵,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대학로 로타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가 지나가던 주민 박 모 씨를 치었습니다. 당시 운전자 오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19%로 만취 상태였습니다. 이 사고로 피해자 박씨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는 등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잘 읽는데?”
정은이는 아까 원고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또렷한 발음으로 읽어내려 갔다.
“네. 이상하게도 어떤 건 잘 읽혀지고 어떤 건 잘 안돼요”
“어떤 게 잘 안되는데?”
“그게 갑자기 그래요. 뭐가 그렇게 된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정은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정은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네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 같은데. 집에 가는 길에 병원에 한 번 들려봐”
“그럴까요. 언니 죄송해요. 저 먼저 집에 갈께요”
정은이는 풀이 죽은 채로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한테 물었다.
“언니 이럴 땐 무슨 병원에 가야해요?”
“그러게 말이다...... 이비인후과에 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
“네 알겠어요. 먼저 들어가서 죄송해요. 내일 뵙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정은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신과에 가보라는 충고를 꿀꺽 삼켰다. 시험에 관한 강박증은 한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 리포터도 하고, 몇몇 사내 방송에서 활약하기도 하며 나름대로 경력을 탄탄히 쌓아온 정은이가 시험 스트레스로 인해 저렇게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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