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CEO들의 만화책 읽기」상상력 아카데미

기자명 이선영 기자 (sun3771@skku.edu)

상상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보 사회의 물결 이후, 세계는 다시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휩싸였다. 창조적 상상력은 이제 거대한 사회적 변화에서부터 우리의 소소한 일상의 변화까지 이끌고 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에너지 상상력,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을까.

 

꼬깃해진 약도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경기도 화성. 도착지는 '책 읽는 집'이라는 미래상상연구소 부설 상상교육센터였다. 사무적인 분위기의 아카데미를 상상했던 것과 달리 농업CEO들과 만화가들은 한옥집 작은 사랑채의 둥근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틀에 박힌 상상력을 깨버린 이곳에서 색다른 아카데미가 시작됐다.

에밀레종과 성덕대왕신종의 차이
첫 발표는 미래상상연구소 대표인 숙명여자대학교 홍사종 교수의 강연이었다. 강연의 핵심은 한마디로 세상이 꿈과 이야기를 파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양계장 달걀을 사먹던 주부들이 좀 더 비싼 수정란 달걀을 사먹는 것도 모두 ‘이야기 값’이다. 기계적으로 달걀을 생산해내는 양계장보다는 왠지 모를 감동적인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이끄는 "상상력과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에밀레종과 성덕대왕신종의 일화를 통해 잘 나타난다. 그는 문화관광학과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90명이 에밀레종을 먼저 보겠다고 대답했고, 90명 중 85명이 나중에, 5명은 안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에밀레종과 성덕대왕신종은 같은 종이라는 것이다.

에밀레종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평생 각인돼듯 이제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꿈과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후 '상상력으로 푸는 FTA에 대비한 농업 현실 타개방안'을 이야기한 경희대학교 산업공학과 김상국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농업을 국민 비즈니스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선 차별화된 스토리와 상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아톰 만화를 보고 자란 우리가 기계나 로봇에 익숙한 것처럼, 알기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 만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화책으로 해결하는 농촌문제
이제 본격적으로 중요한 작업이 시작됐다. 이번 아카데미의 특징은 젊은 만화가들과 농업 CEO들이 함께 스토리텔링 된 시놉시스를 만화로 그려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토리텔링은 국내 창작만화의 최고편이라 불리는 『크로니클스』 1·2편을 읽고 다음 3편을 상상해 그림으로 그려 넣는 작업이었다. 거북이북스 강인선 대표이사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정답이 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진지함과 엄숙주의에서 벗어나라"고 말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만화가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농업 CEO들은 3명 정도 조를 만들어 각자 방에서 아이디어를 쥐어짰다. 한 조에서는 상짱 일행이 포도호텔, 호박집 등으로 이뤄진 마을에 도착해 베짱이를 괴롭히는 부자개미를 발견하고 이들을 계몽시켜 칼파석을 얻는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들기도 했다. 개미는 미국, 베짱이는 우리의 농촌현실에 적용시킨 것으로, 어떻게 교육적으로 계몽시켜야 재밌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일기도 했다. 곧 새하얀 전지는 CEO들의 상상력과 만화가들의 손놀림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작업에 참가했던 고장환 만화가는 "만화가 농업현실을 해결하는데 일조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많은 경험과 기회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사종 교수는 "모든 창조물은 인간의 만화적 상상력에서 나왔다"며 앞으로 농업 CEO들이 만화적 상상력을 키워야 하는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제 막 시작된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상상력으로 사회변화를 이끌 새로운 바람이 되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카데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