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2006년에 터진 영화계와 언론의 환호성을 기억하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3개월 동안 1천 3백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역대 흥행성적 1위를 경신했고 각종 언론사들과 충무로 영화계는 <괴물>을 침체된 한국영화계의 구세주인 양 떠받들었다. 하지만 관객뿐만 아니라 개봉관까지 독차지한 <괴물>앞에서 마이너영화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제작비용도 극히 적은데다 홍보비용이 부족한 소자본 영화들은 거대 메이저 회사가 독식한 스크린 앞에서 필름을 묻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이너쿼터라는 새로운 방안이 몇몇 영화인 사이에서 대두됐다. 마이너쿼터란 일반 영화관이 마이너영화를 일정 일 수 이상 상영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제도를 뜻한다.

자본의 힘 앞에서 마이너는 울상
사실 마이너쿼터 자체는 독립영화계 사이에서 수년간 다뤄진 내용이었다. 불합리한 배급구조는 <괴물> 그 이전부터 지속돼 온 문제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개봉관 수는 철저히 자본논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소자본의 마이너영화가 개봉관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저예산 영화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독립영화 감독이자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조교수인 황철민 씨는 “독립영화가 상영조차 되기 힘든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마이너쿼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며 마이너쿼터가 가진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쿼터 도입 둘러싼 현실적 어려움 도사려
하지만 마이너쿼터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경제적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다수 영화관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 흥행성적이 올해 개봉한 ‘우리학교’가 세운 9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독립영화는 재정적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다. 이 점에서 영화관측은 시장논리를 내세우며 마이너쿼터 도입을 꺼리는 것이다. CGV 프로그램팀 조홍석 직원은 “수익을 추구하는 우리로서는 마이너영화의 범주와 수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마이너쿼터를 실행하는 게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부 측도 난색을 표하기는 마찬가지다. 문화관광부 영상산업팀 이용희 직원은 “시장논리에 반하는 마이너쿼터라면 정부 차원에서도 선뜻 시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신 정부는 인디스페이스 등의 독립영화관을 건립하는 방향으로 지원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지원에 회의적인 시선 또한 만만치 않은데 이에 대해 하 평론가는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같은 가격이면 예술적 측면보다 재미를 추구하기 마련이라 독립영화관 1천 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그 곳을 찾을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한 금전적 지원에 관해서도 “분명 수치상으로는 지원 액수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급구조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 지원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보호’라는 이름 하에 역효과 낼 가능성도
그 밖에도 마이너쿼터의 본래 취지와 달리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대형 영화관들이 트렌드에 부합하는 마이너영화들만을 선정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영화관으로서는 독립영화를 위해 자선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독립영화가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고 지원에만 기대려고 한다는 것도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쿼터,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도해 볼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쿼터의 필요성은 영화계에서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다. 부족한 금전적 지원으로 허덕이고 있는 마이너영화와 대형 자본 공급속에서 보호받는 메이저 영화의 대결은 마케팅, 흥미 면에서 결과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만약 경제적인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면 앞으로 대중에게 선택권은 사라질 것”이라며 “마이너영화는 무엇보다 다양성의 문화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필요성에 공감해 마이너쿼터의 취지를 살린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트플러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영화관이다. 전용극장과 달리 아트플러스는 일반 영화관에 마이너영화 전용관을 설치해 관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아직 전국을 통틀어 18개에 불과하지만 만일 이 아트플러스 영화관이 더욱 늘어날 경우 긍정적 방향의 마이너쿼터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마이너영화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금 마이너영화계는 배급구조, 수익 면에서 주류 영화의 덩치에 밀려 성장이 주춤한 상태다. 그 와중에 과연 한국 영화계가 위험성을 감수하고 마이너쿼터라는 모험을 선택할 지 아니면 경제원칙을 사수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