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호(경제04)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성균관대학교라는 곳에 입학한지 4년 가까이 되어간다. 이 곳 재학생으로서 우선 부끄러운 생각부터 들었다. 학교 도서관 앞에 역동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동상을 보고 그냥 누구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별 감흥 없이 지나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분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그분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신 분인지 모르고 지내왔다. 

‘저게 선배들이 말한 마세이 상이구나,  무언가 학교에 중요한 일을 하신 분이기에 저렇게 동상으로 서 계시겠지’ 이 모습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찰나에 학교 홈페이지를 뒤져보다 김창숙 선생에 관한 동영상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김창숙 선생에 관한 일대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내용이었다. 부끄럽지만 이 동영상을 보고 느낀 점을 짧게나마 적고자 한다.

우선, 심산 김창숙의 개인적인 면을 살펴보면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의(義)’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부패와 독재가 만연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이승만을 상대로 보여준 ‘하야 경고문’, 그리고 ‘죽어서도 눈을 걸어 독재자가 망하는 꼴은 꼭 봐야 한다.’라는 발언 등은 그의 굳은 의지와 뚝심을 엿 볼 수가 있었다. 또한 남들이 현실에 타협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지조를 지키려하는 선비 정신이야 말로 심산 김창숙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1952년 6월 20일 이시영, 김성수, 장면 등 81명의 인사가 부산의 국제구락부에 모여 정부 측이 내놓은 ‘대통령직선제개헌안’에 반대하여 반독재 호헌구국선언을 꾀하는 국제구락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폭력으로 만연하였는데 자신의 피 묻은 옷을 벗지 않고 온 몸이 피 터지는 상황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김창숙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만 힘들면 쉽게 포기하는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한 분인지는 알고 도서관에 들어 갈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서관을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나의 작은 생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