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knews.com)

11월이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수능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버린다. 중요 일간지를 비롯해서 공영방송에까지 수능문제와 답이 실리고 해설이 뒤따른다. 이어서 대학지원과 관련된 정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온다. 지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이 금년엔 더 심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고려해야 하는 정보가 많아진 탓이다. 내신도 관리해야 하고, 수능도 잘 보아야하고, 논술도 준비해야 하는 소위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걸린 것이다. 게다가 대학마다 영역별 배점 기준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대학에서 시행하는 전형 유형간에서도 다르다. 두 번째 이유는 학생의 능력을 판단하라고 제공하는 정보가 변별력이 없고, 공정성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 가지 정보 중 내신과 수능 성적이라는 두 가지 정보는 9개의 등급으로만 제공된다. 원점수로 해도 동점자가 무수히 많은데, 9개의 등급으로만 나누면 어떻게 학생들의 실력 차이를 알 수 있을까? 게다가 등급을 매기는 기준도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다.

과목 간에 난이도가 다르고, 응시생도 다른 상황에서 과목별로 매겨지는 등급은 과연 공정한 정보가 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러니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도,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도 학생의 실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월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월성을 확보하는 것은 개인 수준에서 만이 아니라 대학, 사회, 나라 등 모든 수준에서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되고 있다. 앞서 말한 현상도 학생의 수월성을 더 잘 키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과 부모들이 벌이는 정보전의 한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대학의 존폐만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현재의 성취정도만을 고려해서 학생을 선발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성 또한 중요하기에 우리 대학을 비롯해 많은 대학들은 농어촌 전형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도 교육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대학은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할 수 있는 변별력과 공정성을 가진 다양한 선발 방안을 찾아낼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