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대체, 가족개념 변화의 토대 닦아

기자명 김청용 기자 (hacar2@skku.edu)

기존의 가족개념을 변화시킬 지렛대가 될 가족관계등록법(이하:등록법)이,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 단위 호적을 편재하던 종전의 방식을 폐지하고 국민 개인별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는 제도이다. 또한 이전의 호적부를 △기본 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입양관계 증명서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등 5개 증명서로 세분화해 개인정보 공개를 최소화했다. 무엇보다 여성이 본인 호적의 주인이 되는 길을 터놓아, 우리나라 가부장적 사고의 틀을 깼다고 평가받고 있다.

독립된 주체 보장, 정상가족의 스펙트럼 넓혀
나아가 개인별 가족등록제 실시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헌법이념을 구체화한 것으로써, 개인이 가족의 주체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로 역할하고 있다. 즉, 호주 ‘A’의 자녀나 아내로 규정되던 개인이 문서상으로나마 호주에게서 주체로 독립하게 되는 시금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등록법은 아직 씨족사회적 전통이 상당부분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는 성균관 구자관 가족법대책위원장의 말처럼, 지나친 개인주의의 심화와 우리나라 전통적 친족체계의 붕괴 우려도 있어 이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등록법은 ‘정상가족’의 모범답안을 규정하지 않아 대안가족 현실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법 개정 전에는 무조건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 했지만, 법 개정을 통해 어머니의 성을 사용할 길이 열렸기 때문. 뿐만 아니라 변경이 불가능했던 본인의 성(性)과 본(本)을 일정 절차를 통해 바꿀 수 있게 됐다. 덕분에 기존 문서상에서는 성이 달라 여러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혼가정 △재혼가정 △미혼모 자녀의 인권과 사생활을 서류상으로 보장받게 됐다. 이에 대해 대안가정운동본부 김명희 국장은 “기존의 가족법 하에서는 보호받지 못했던 이들이 등록법을 통해 자유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입양아 인권보호와 사회적 논의 여전히 미흡해
그러나 여전히 대안가족의 또다른 형태인 ‘입양’ 문제에 있어서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개정된 등록법은 가정에서 아이를 입양하게 되면 5가지 증명서 중 하나인 가족관계증명서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부모라는 사실이 드러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증명서가 취직 지원서나 보험 가입시에 필히 첨부돼야 하기 때문에 입양아는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라도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양부모가 가족관계증명서에 친부모로 등록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긴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등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등록법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법이 제정되기 전이나 후에 등록법에 배타적인 사회구성원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합의 과정이 상당부분 결여됐기 때문이다. 서울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국장은 “남성이 중심이던 호주제가 무너짐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며 “여전히 팽배해 있는 부계 가족 중심의 사고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과정을 밟아 나가지 않는다면 등록법은 그저 종이 한 장, 그 이상의 가치를 얻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