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드레서, ‘여성성’과 ‘남성성’ 탈피한 제3의 성(性) 찾아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신대방역 근처 어느 골목. 조그만 간판이 빛나 살펴보니 평범한 카페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조금은 ‘다른 곳’. 조심스럽게 카페 문을 여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카페 내에 배치된 크고 화려한 거울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바로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 이하:CD)들이 모여 서로의 공통점을 공유하는 공간, A카페. 여장남자 CD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카페 중 하나인 이곳을 찾아 CD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살펴봤다. 개인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 실명 및 닉네임을 공개하지 않고 가명으로 처리한다.

자신의 성별 부정하는 트랜스젠더와 달라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며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로 한껏 멋을 내는 남성과, 짧은 머리에 남성 정장을 입은 자신의 늠름한 모습에 만족스러워 하는 여성. 이처럼 이성의 복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통틀어 일반적으로 CD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성 정체성이라는 문제가 한마디로 정의할 만큼 간단치 않다보니 많은 오해가 생기기 마련. 그 중에서도 CD와 가장 혼동되는 개념이 바로 트랜스젠더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CD와 트랜스젠더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CD가 자신이 남성임을 또는 여성임을 인정하고 이성의 복장을 착용하는 반면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현재 성별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만난 김○○(26)씨는 짧은 청미니스커트를 입고, 가슴 보형물까지 착용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여자 친구와 사귀고 있다. 그는 “남자로서 잘 살고 있지만 여장을 좋아할 뿐”이라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CD는 트랜스젠더처럼 자신의 성별을 전환해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여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을 단순히 성적쾌감을 얻기 위해 이상행동을 보이는 성도착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다. 그들에게 이성 복장 착용은 단순히 쾌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아 정체성의 형성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CD는 이처럼 자신들을 분명하게 규정지으려는 의도가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개념 규정이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기 때문. 어린 시절 누나들의 장난으로 여장을 시작했던 이○○(20)씨는 코스프레에 참여하다가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여장을 시작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여장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로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CD라는 개념이 나를 너무 틀 안에 가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옆에서 고객을 끄덕이던 김○○씨 역시 “성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개념을 명확히 구분 짓는 게 과연 가능하며 옳은 일인가”라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강요된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틀 거부해
이처럼 ‘CD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내부적으로도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그들이 이성의 복장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은 하나로 모아진다. 카페 안에서 새로 산 가방을 뽐내기도 하고, 서로 화장을 해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테이블에 올려진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흥미롭다. A코스, B코스 등으로 나뉘어 각 코스 별로 일상 여성복부터 드레스까지 다양한 옷과 △네일아트 △메이크업 △스킨케어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지고 질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소비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카페 고객 중에는 여장남자가 많은데, 이러한 현상의 주요 요인으로서 가부장제의 억압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이 카페뿐 아니라, 전체 CD 중에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가장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과 지위에 부담감을 느끼다가도 CD 카페에 찾아와 여장을 즐기면서 그 해방구를 찾는 것이다.
공격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가부장 질서에 회의를 느꼈던 김○○씨 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자란 정○○(31)씨도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느끼던 중 스타킹을 처음 신게 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이○○씨도 “여장을 하면 가장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해 여장의 사회적 원인으로서 가부장제가 크게 작용함을 시사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억압이 원인이라는 것은 남장을 즐겨하는 여성 CD의 목소리까지 포괄하지는 못한다. 이와 관련 인터넷에서 남장여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신○○씨는 “여성은 얌전히 행동하고,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규정되는 것이 싫었다”며 “남장을 통해 나의 남성성을 확인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편, 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 ‘여성성’에 의문을 갖기는 남성과 여성 모두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정○○씨는 “성별을 구분 짓는 것 자체에서 성차별이 생긴다”면서 “남성스러움을 강요당하는 남자도 성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CD가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틀에서 탈피하는 것은 단순히 ‘도피’의 측면을 벗어나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실리콘 소재로 된 고가의 가슴 보형물을 샀다는 김○○씨는 “이성복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 목적이 아니라 여성성을 부분적으로 취함으로써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CD의 존재 자체 부정하지 말아야”
그러나 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CD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 소위 ‘정신병자’라는 비난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조차 정체성 문제를 쉽게 털어놓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A카페 매니저 문○○씨는 “실제로 손님 중에 교수나 기업 간부, 공무원 등 사회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 분이 많다”며 “이들은 커밍아웃 했을 경우 잃을 수 있는 것이 많아 자신이 CD임을 철저히 숨긴 채 이중생활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던 5명 중 대학생인 이○○씨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CD임을 감추고 있었다. 부모님과 따로 사는 박○○(25)씨는 자신의 원룸에서 여장을 즐기고, 종종 여장을 한 상태로 외출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에게만은 절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러한 이유를 CD와 트랜스젠더의 개념차이를 통해 설명했다. “우리는 트랜스젠더에 비해 커밍아웃에 적극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자신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야한다고 느끼는 트랜스젠더와는 달리 CD는 자신의 성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인생 전부를 걸고 커밍아웃하기가 쉽진 않죠”

이러한 그들의 바람은 크지 않다. 자신이 CD임을 밝히고 생활하고 있는 이○○씨는 “성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립해가는 과정과 행위 그 자체를 사회가 부정해 우리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한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사회적 풍토는 지양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