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수영 기자 (geniussy@skku.edu)

정치적으로 혼돈과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던 80년대의 대한민국. 이 시간 속에는 열정적으로 사회를 논하던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로 인해 정신적으로 방황했고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허무함과 상실감을 느끼곤 했죠. 박상우의 소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속 주인공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소설은 전두환 정권이 도래하면서 정치에 ‘정’자도 꺼내지 못하는 위압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사회비판과 철학적 고민으로 뜨거웠던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군부정권의 폭력이 시작됨과 동시에 비판할 힘도, 의지도 잃게 되죠. 가슴속에 공허함만이 떠도는 그들은 사라진 열정에 깊은 자괴감을 느끼며 서로 멀어져 갑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그들은 치열한 옛 시절에 알았던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스스로 ‘샤갈의 마을’이라 부르는, 샤갈의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가득찬 작업실로 일행을 이끕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마저 어느 대화에도 끼지 않고 방관자로 겉돌던 주인공은 작업실에 걸린 많은 샤갈의 그림 중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그림 하나를 보게 되죠.

△ 샤갈의 '나와 마을'

바로 그 그림이 샤갈의 <나와 마을>입니다. 샤갈의 가장 상징적인 유화 작품으로 꼽히는 이 그림은 샤갈이 떠나온 고향, 비프테스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미소 짓는 염소와 샤갈 자신을 상징하는 녹색 인간, 거꾸로 매달린 집들과 남자의 손에서 자라나는 나무 등 샤갈만의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죠. 이는 그림 공부를 위해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샤갈이 항상 꿈꾸던 고향을 이미지화한 것들입니다. 어찌 보면 기괴하지만 그림 속의 염소젖을 짜는 아낙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염소를 통해 샤갈은 고향의 따스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죠.

주인공은 이런 몽환적인 이미지 속에서 취기로 의식을 잃어가지만 동시에 그 치열했던 시절을 함께한 동료의 힘있는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작가는 확실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 시대적 출구를 찾아 헤매는 그들의 안식처로서 샤갈의 그림을 전하며 소설을 끝내는데요 주인공과 샤갈, 그들이 있어야 했던 곳은 ‘타향’일 수밖에 없었기에 이렇게 마음의 고향에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꿈처럼 희미한 이미지가 만들어낸 고향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