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법규 제정 미비, 업주들은 책임감조차 상실

기자명 김청용 기자 (hacar2@skku.edu)

20대의 건장한 청년인 김영성 씨(가명·23)는 부천 역곡역 근처 주유소에서 3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는 주유소를 가득 메우고 있는 유독성 VOC(휘발성 유기 화합물)를 3개월 동안 호흡하며 일해온 셈이다. “그까짓 보이지 않는 위협 때문에 돈벌이를 방해받을 수야 없죠.” 김영성 씨에게는 자신이 처한 생명의 위협보다 생계유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사업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10대·20대 위주의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동안 △월급 미지불 △최저임금선 불이행 △월급 ‘꺾기’등의 관행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규약 위반과는 또 다른 차원의 위협이 존재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생화학적 건강권 침해가 그것이다.

도처에 널린 생화학 위협
아르바이트생에게 심각한 악영향

△중금속 △유독가스 △화학물질 등에 의한 생화학적 위험이 높은 대표적인 작업장은 ‘주유소’이다. 주유소는 아주 간단한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손쉽게 근무할 수 있는 곳이라 아르바이트 일터로서의 접근성이 상당히 높다. 또한 주유소 영업주들이 대부분 20~26세 위주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청년층에게 각광받는 일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주유소 주변에 현기증과 내출혈 등을 초래하는 VOC 함량이 일반 대기보다 8배 이상 높다는 점. 주유소에서 자체적으로 이런 물질들을 거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하루일과를 끝내고 퇴근할 무렵이면 즉각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신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 학교 화학과 박윤창 교수는 “VOC는 오래 노출되면 백혈병까지 일으키는 복합 유독물질”이라며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어떤 유해 물질에 노출돼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유해물질에 대한 교육 의무화 방침과 마스크와 같은 안정장비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김영성 씨의 사례처럼 현실적으로 이 원칙이 현장에서 준수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밖에도 농약에 장기간 노출되는 골프장의 캐디 역시 생화학 위험에 노출된 아르바이트 직종의 하나로 꼽힌다. 대중적인 아르바이트 자리는 아니지만 캐디의 90% 이상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위해요소를 사전에 검토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골프장마다 사용하는 농약의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농약이 VOC와 비슷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불임에 이르는 20대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많다는 사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준다. 또한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심지어 고기 구이판을 닦는 청년 아르바이트조차도 유독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청년들의 생화학적 안전이 침해받고 있는 경우는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다.

생색만 내는 정부권고,
억지로 응하는 업주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은 관련 법규를 충분히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는 것. 주유소처럼 사람이 많이 몰리는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는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있지만 따로 유해직장으로 지정하지는 않아 체계적인 관리 감독이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 노동청 박성대 근로감독관은 “정규직들의 노동여건이 심각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생화학적 위험에 대한 통계를 내 볼 겨를이 없었다”며 정부 감독의 한계를 시인했다.

업주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떻게 작업장을 운영할 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실제적인 환경상의 문제는 도외시하는 것이다. 서울 혜화동 모 주유소 주인 A씨는 “법으로 규정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지키고 있지만 VOC가 어떻게 신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지는 잘 알지 못한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이들은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요식 정도로만 실시하는 등 책임있는 업주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치명적인 위협에 노출돼 있는 아르바이트생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신체는 유해물질로 오염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