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소녀 마르잔이 흰 띠를 두르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외친다. “국왕 타도! 국왕 타도!” 이는 이슬람 혁명의 격변기를 겪고 있는 한 소녀가 살고 있는 집의 창 밖에서 들리고 있는 외침이기도 하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는 영화 초반, 이렇게 귀여운 꼬마의 놀이를 보여주며 이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조심스레 들추기 시작한다. 동그란 눈에 곱슬거리는 단발을 가진 이 소녀는 비록 그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국왕 타도’를 외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옥행과 고문 그리고 죽음을 그 작은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듣기 시작하면서 ‘이란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차차 깨닫기 시작한다.

소녀 마르잔에게 있어 여자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40도를 웃도는 한 여름에도 검은색 차도르를 꼭 쓰고 다녀야 하고 학교에 지각을 하더라도 뛰어서는 안 된다. 음란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혁명과 여권 억압이 두루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도 소녀 마르잔의 몸과 마음은 성장해 나간다.

영화 <페르세폴리스>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물과 배경 그림의 선 굵기, 움직임의 속도 차이 등 일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낼 수 없는 효과들로 사건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또한 영화 전체의 90% 이상이 흑백으로 구성돼 암울한 이란 사회의 분위기를 색채를 통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특유의 풍자와 익살을 통해 시종일관 희극적 요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영화에겐 단순히 동정적인 시각으로 이란의 현실을 알리는 것 보다 이란 여성의 눈으로 거품 없이 담백하게 비춰진 이란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 때문일까? 관객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이란 사회의 놀라운 모습들에 빠져들게 된다.

부모님에 의해 오스트리아로 보내진 마르잔은 풍족과 자유의 울타리 안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마이클 잭슨의 노래도 맘껏 듣고 남자친구들과 파티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서 차오르는 모국에 대한 향수는 그녀로 하여금 ‘이란 여성으로 돌아감’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또 한 번 씌울 준비를 한다. “여기서는 이란인이라고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고요!”라며 줄곧 자신을 프랑스인으로 위장했던 마르잔. 그 소녀가 여자로 성장해 “어디서 왔냐?”는 영화 속 마지막 물음에 꺼내는 대답은 영화관을 나오는 내내 당신의 가슴 속을 맴돌게 될 것이다.

△기간:~5월 중순
△장소:광화문 씨네큐브
△입장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