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일상에 스며든 생태적 사고, 자연의 입장에서 고민해

기자명 김정윤 기자 (kjy0006@skku.edu)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 살아가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 그래서인지 우리는 항상 세제를 듬뿍 묻혀 설거지를 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샴푸로 머리를 감은 다음,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그런데 여기, 자연을 위해서 인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곳이 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의 둔철산 중턱에 위치한 안솔기 마을. 대표적인 생태마을로 알려진 안솔기 마을에 찾아가 진정한 생태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9년부터 입주자를 모집하기 시작한 안솔기 마을은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친환경적 주거 양식’을 조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계획됐다. 마을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민간 차원에서 조직됐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로 운영이 성공한 사례이다. 그렇다 보니 외부에서 자문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안솔기 마을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계획 시기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건축물은 물론 생활양식 역시 ‘친환경적’ 
안솔기란 ‘안쪽에 소나무가 많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지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울창한 소나무에 둘러싸인 16가구 주택의 모습은 마치 갓 그려낸 수채화처럼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나무집은 마을 주민 최세현씨가 손수 건축한 자택. 얼핏 보기에도 느껴지는 나무의 거친 질감이 걸러내지 않은 자연의 숨결을 전한다.

사실 최 씨의 집 뿐 아니라 마을 대부분의 건축들은 주민 스스로에 의해 설계됐다. 그래서인지 규격화된 도시와는 달리 흙과 나무를 이용한 한옥부터 수공식 통나무 주택, 서양식 목조 주택까지 다양한 모습의 주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용된 자재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어진 집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2000년부터 이 마을에 살아왔다는 이종숙(45) 씨는 “친환경적 주택을 건축함으로써 주민 모두가 자연과 어울려 살고자 한다”며 외관상의 아름다움만을 좇는 건축물과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지붕위로 자라나고 있는 소나무. 안솔기 마을은 주택 건축에 있어서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 하고자 한다.

마을 안쪽으로 좀 더 들어서자 지붕을 뚫고 자라는 커다란 나무가 인상적이다. 경사가 많은 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토지 손실을 최소화한 집도 있다. 이를 두고 최 씨는 “도시였다면 건물을 짓기 편리하도록 땅을 깎고 나무를 뽑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고 마을의 생태적 의미를 강조했다.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건축물 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양식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화장실 문 앞에 적혀 있는 ‘똥의 밥됨을 위하여’란 문구가 환경 친화적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을의 대표적 노력을 보여준다. 마을내의 모든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닌 자연발효식으로 돼 있어 매번 변을 본 후에 부엽토를 뿌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환경오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민들은 이를 고수한다.

화장실 주변에 피어있는 갖가지 꽃과 풀들도 눈여겨볼만하다. △미나리 △고마리 △노란꽃창포 △갈대. 얼핏 보기에는 미관용으로 보이는 이 식물들이 사실은 생활하수를 자연 정화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 마을사람들은 수생식물을 키우고 관리하면서 천연 정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어두운 밤에도 가로등 하나없이 오직 달빛에 의지해 생활한다. “사람 몇 명 편하자고 주변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 풀벌레 들이 밤잠을 설치도록 해서는 안되잖아요” 최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동물과 나무, 풀을 비롯해 아주 작은 벌레들조차도 안솔기 마을의 주민이다.

민주적 소통, 함께하는 공동체 등 대안 가치도 창출해 
이러한 생태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로 이사를 온 주민들에게 ‘자녀교육’은 뺄 수 없는 고민거리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 안솔기 마을의 설립 의도는 ‘학교를 배후로 한 주거 집단’으로서 대안 교육과 함께 친환경적 의미를 이어가는 것. 그래서 마을 앞까지는 산청 초등학교로 가는 스쿨버스가 운영되고, 도보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대안 고등학교인 간디학교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특히 고3 학생들을 위해서는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제공할 정도로 마을과 학교의 연계가 잘 이뤄져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간디학교로 등교하는 위서현(19) 학생은 “학교에서 교육받는 내용이 만족스럽고 홈스테이 생활에서도 즐거움을 느낀다”며 안솔기 마을과 간디학교가 대안 가치 실현에 서로 도움이 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자연과 함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모습. 안솔기 마을은 생태 가치에 대한 교육 현장임과 동시에 체계적 교육을 제공하는 대안 학교와 연계하고 있다.

한편 마을의 모든 사안은 월 1회 열리는 주민 모임을 통해 결정된다. 취재 요청 허락, 마을길 포장 여부부터 ‘개를 키우도록 허용할 것인가’와 같은 아주 사소한 내용조차도 모두 회의를 통해 결정 된다. 수차례 이뤄진 주민모임을 통해 마을 자치 규약도 마련돼 있는 상태. 규약을 포함한 모든 사안은 공동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주민들 간의 약속이다 보니 표결을 통해 ‘손쉽게’ 결정하지는 않는다. 단 한명이라도 반대의사를 갖고 있다면 끊임없이 대화함으로써 사람과 자연 사이에 앞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는 것.

이렇듯 끊임없는 소통으로 함께 하는 삶을 만들어가다 보니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2006년 9월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 입주를 결정했다는 이민석(49)씨는 “떨어져있는 가족, 먼 친척보다 오히려 이웃들이 더 친하다”며 “지난해 6월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마을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웃음 지었다.

음악회를 포함하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더불어 정월 대보름 윷놀이 대회와 같은 명절 행사까지, 주민들은 다함께 모여 ‘더불어 사는’ 넓은 의미의 공동체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자연을 위해 감내하는 유용한 ‘불편함’

수생식물의 일종인 노란꽃창포. 생활하수 등 오염물질을 자연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어차피 숲을 파헤쳐서 건물을 짓는 것인데 무슨 생태적 의미를 갖겠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자연을 보존하겠다고 도시에서 무의식적으로 환경오염을 시키는 것보다 자연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며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말했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항상 서로에 대한 양보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공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를 위해 감수하는 불편함은 때때로 ‘유용하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입장’에서 이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생태마을이 추구하는 의미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것이 생태마을이 담고 있는 공존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