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예술회관, 공연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올라

기자명 김용민 기자 (claise@skku.edu)

지난 4월, 예술의 전당은 가수 이소라씨의 폭로로 드러난 대관 시스템의 폐해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가장 이슈가 된 사안은 대관 관련 직원의 비리였지만 그 이면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대관료 문제가 있었다. 당시 예술의 전당이 요구한 순수 대관료는 2천2백만원. 대중가수의 공연 비용으로는 쉽게 생각하기 힘든 액수였다.

공공기관의 의미 망각한
문화회관의 수익성 지향

소위 말하는 공연예술회관의 빅3(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의 대관료는 그 명성만큼이나 비싸다. 예술의 전당은 회당 3백80만원(뮤지컬 기준)을, 세종문화회관은 회당 6백만원을 대관료로 받고 있다. 게다가 치열한 대관 경쟁 때문에 대관 신청업체들은 입찰 신청을 할 때 울며 겨자먹기로 웃돈을 얹어주기 일쑤인데 한 공연단체는 매출액의 13%를 추가로 달라는 세종문화회관측의 요구로 인해 대관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세종문화회관은 많은 문제점을 낳은 대관입찰제를 7월부터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비싼 기본 대관료 때문에 일각에서는 빅3를 ‘과시용 공연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빅3위주의 공연예술시장에 불기 시작한 서울의 지역문화예술회관(이하:지역회관) 붐이 기존 빅3가 독점하고 있던 예술 공연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구 충무아트홀과 노원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한 지역회관들은 값싼 대관료와 관람료, 빅3에 뒤지지 않는 무대시설 등을 통해 조용히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문화예술회관연합회에 가입돼 있는 지역회관은 총 16개. 규모 자체를 빅3와 비교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정명훈, 조수미와 같은 유명인 예술인들의 공연으로 해당 지역주민은 물론 타 지역주민들까지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낮은 수익성 부담, 공연대중화 이끌어
이렇게 지역회관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재정지원도가 높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지역회관들은 운영비 대부분을 구청에서 조달하고 있어 공연수익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 노원문화예술회관 공연기획팀 조현주 직원은 “총 운영비에서 공연수익으로 충당해야 하는 비율이 20%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관료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노원문화예술회관의 대공연장(616석)의 대관료는 3시간에 30만원. 비슷한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가 1백만원인 점을 감안했을 때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다른 예술회관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관료 거품을 빼고 있는데 반해 빅3는 재정자립도가 80%에 육박할 만큼 공연 수익률이 높다. 이러한 빅3의 높은 수입은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공기관의 목적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회관의 저렴한 대관료는 곧 합리적인 입장료와 유명 예술들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충무아트홀의 위아영 직원은 “우리 회관은 대극장 규모의 라이센스 뮤지컬 초연의 경우에도 정책적으로 공연티켓 가격을 10만원 이하로 책정했다”며 “지역주민들이 저렴하면서도 좋은 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회관 설립의 취지”라고 밝혔다. 다른 지역회관들도 관람료를 2만원 정도 인하하는 등 일반 시민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공연료를 지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값 싼 대관료가 시설의 낙후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포아트센터는 4월 MAC로 재개관하면서 각종 부대시설과 음향시설을 최첨단 장비로 꾸몄고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일반 문화회관에서 보기 힘든 오케스트라비트(오케스트라를 연주할 수 있는 특수 좌석)와 이동무대를 갖춰 각종 대형 공연에 대비하고 있다. NOW 무용단의 이정은 직원은 “요즘 지역회관은 빅3에 견줘도 될 만큼 음향, 부대시설 면에서 뛰어나다”며 지역회관 시설에 대해 호평했다.

남은 숙제는 기관의 독립성 보장
물론 지역회관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지역회관의 권한 대부분이 구청에 종속돼 있어 경영에 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노원문화예술회관 조 직원은 “형식적으로는 공기관이기 때문에 담당직원의 위치가 정기적으로 바뀐다”며 “이는 시설개선이나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남권과 4대문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회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울 내 지역회관이 경영 제약 때문에 시설이 낙후돼 있다. 또한 최대 3천여 석까지 갖추고 있는 빅3 대공연장과 비교했을 때 규모에서 여전히 열세에 있는 형편이라는 점도 문제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박수현 홍보직원은 “발레라는 대규모 공연의 특성상 많은 관객과 넓은 시설을 필요로 하지만 아직까지 빅3를 대체할 공연장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할 정도로 지역회관이 대형문화회관의 기능을 대체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근 5년 동안 나타난 지역회관의 발전은 분명 공연예술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과 경영혁신 등을 통해 문화회관의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 지역회관의 새로운 시도. 향후 한국공연문화에 어떤 밑거름이 될지 예술계는 기대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