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중단편전집』, 김성한

기자명 진가연 기자 (iebbi@skku.edu)

6·25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수많은 사상자와 재산피해 속에 문학계에서는 전쟁의 아픔을 다룬 작품과 함께 전후 무질서한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작품 역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중에서도 김성한의 작품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구현에 초점을 둔 실천적 인간형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당시 문학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소설 『오분간』은 신의 권위에 도전한 프로메테우스와 신의 대결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전후의 폐허화된 정신 상태를 우의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 바위에서 쇠사슬을 끊고 무한한 자유를 얻으면서 시작한다. 소설 속에는 자기중심적이고 욕망만 앞선 프로메테우스의 아들딸들과, 입을 놀리기만 할 뿐 실천과 행동은 뒷전인 신의 아들딸들이 존재하며 이들로 인해 지상은 혼란에 빠진다. 이를 지켜보던 신은 천사를 보내 프로메테우스에게 회담을 제안하고, 신과 프로메테우스는 중립지대의 구름에서 협상을 벌인다.

신은 이 같은 혼돈이 공동의 위기임을 강조하며 프로메테우스에게 자신의 부하가 되어 함께 살길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신을 조롱한다. 이처럼 협상이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자 신은 ‘자신도 프로메테우스도 아닌 제3존재의 출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탄식한다. 이는 1950년대라는 전후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신이라는 기존의 절대적 가치가 사라져 버린 현실에서 ‘인간은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김성한은 이듬해 『바비도』를 발표하면서 시대에 맞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15세기 영국 교회가 부패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양심과 의지로 대변되는 바비도라는 인물을 제시한 것이다. 바비도는 진리가 아닌 힘의 유무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정의와 양심은 있으나 조직과 집단 유지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는 태자는 바비도가 죽기 직전까지 회유하려 하지만, 오히려 바비도는 태자의 조부가 저지른 반윤리적 행위를 들어서 그를 비꼰다. 그러나 태자는 바비도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인간의 양심이 실재함을 느끼게 된다.

“할 수 없구나, 잘 가거라. 나는 오늘날까지 양심이라는 것은 비겁한 놈들의 겉치장이요, 정의는 권력의 버섯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것들이 진짜로 전재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네가 무섭구나. 네가……."-『바비도』

결국 작가는 『오분간』을 통해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현대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보여주는 한편, 『바비도』를 통해 이 혼돈의 세계를 헤쳐 나가기 위한 인간상, 즉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김성한의 작품들은 전후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 비춰봐도 충분히 시사적이다. 현재의 세계는 마치 소설 『오분간』처럼 갖가지 이해 대립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글로벌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지도 국가였던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발목이 잡혀 제 앞가림도 힘겨워하고 있으며 전 세계는 제 앞가림에 지쳐 지구촌 전체의 문제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오분간』과 『바비도』는 이렇듯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 속 혼란의 한 단면을 우회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시 ‘인간’에 접근한다. 작가가 그토록 강조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구현을 실천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바비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두 소설을 통해 혼란 속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