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유래없는 장기집회···사회적 참여 통해 정치적 환경 극복해야

기자명 윤다빈 기자 (ilovecorea@skku.edu)

#1. “저 같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들이 참 많았어요. 집회 현장에 나가는 것이 당신 후손들을 욕먹이는 일이라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래도 우리 자손들에게 다시는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일념에 또 집회에 나오게 됐네요” - 수요집회에 참가한 길원옥 할머니

#2.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십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와 비슷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가 75명에 이릅니다. 이런 현실이 개선될 때까지 저는 집회에 나올 생각이에요” - 목요집회에 참가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권오헌 공동의장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자 시작된 ‘수요집회’와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목표로 출발한 ‘목요집회’가 각각 8백54회, 7백44회를 맞이했다. 이렇듯 장기간에 걸친 집회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어려운 일로 평가된다. 실제로 수요ㆍ목요집회와 더불어 3대 장기집회로 꼽혔던 금요집회가 재정난과 인력난을 이유로 지난 2003년 4백39회에서 막을 내렸듯,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참가자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시위를 이어오는 중이다. 늑장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 말에도 어김없이 참가자들은 일본대사관과 탑골공원 앞으로 나섰다.

꾸준한 문제제기로 국ㆍ내외적 성과 올려
수요집회는 사회적으로 잊혀졌던 위안부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려나갔다. 또한 목요집회에서는 △양심수 실태 조사 △양심수 석방 △반민주주의 인사 처벌 등의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철거민과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 방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국내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장기집회는 세계적인 집회의 모델로 자리 매김해왔다.

이러한 장기집회는 해외로도 파급돼 △일본 △대만 △호주 △영국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에서 연대집회를 이끌어냈으며, 여러 아시아 피해국들과 아시아연대회의를 결성해 활동을 진행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정대협)의 강주혜 사무총장은 “수요집회의 사례가 해외에 소개되면서 집회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제적 위상도 함께 커지고 있다”며 그간의 의의를 밝혔다.

외면하는 정부, 계속되는 집회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기집회가 성립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엔 이들의 주장이 무시되는 정치적 환경이 존재한다.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국가보안법과 양심수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끔찍한 과거를 경험했던 참가자들의 ‘한’이 이러한 현실과 결합되며 집회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12년째 목요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할머니는 “아들이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이후부터 꾸준히 참가했다. 시위가 지속되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까닭”이라고 장기집회가 이어져온 배경을 밝혔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하는 반민주적 분위기는 집회가 단순히 종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현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발목잡히지 않겠다”며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했다. 여기에 민주화를 외치는 목요집회가 다른 집회들보다 상대적으로 생명력이 긴 것 역시 민주화의 흐름을 역행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현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더해 최근 들어 강화되는 반민주 움직임은 시위 자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인해 추운 날씨에 할머니들이 마스크를 쓸 수 없게 돼 현장에 나올 수 없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공안 정국 형성으로 인해 집회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경찰이 목요집회 현장을 몰래카메라로 채증하다 적발돼 사회적인 파장을 낳기도 했다.

젊은층의 참여가 문제 해결의 새로운 동력
이와 같은 사회적 움직임으로 인해 집회에서 나오는 사안들이 해결되는 일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더구나 장기집회는 그 특성상 참가자 대부분이 노년층이기에 세월에 흐름을 거스르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한 젊은층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요집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길원옥(82) 할머니 역시 “젊은 학생들이 많을 때 우리들은 희망과 기쁨을 느낀다”며 “우리가 하는 노력들이 후손들에게도 꼭 이어지길 바란다”고 젊은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집회에 참가했던 대학생들도 이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가톨릭대 박진호 학생은 “특정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 위주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보다 많은 대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대학생 차원의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희망했다.

“과거사는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강산이 변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순간에도 집회를 이어왔다. 이제는 그들의 요구에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 이것만이 한 회씩의 집회를 거듭하며 쌓여온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들이 해온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