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리뷰

기자명 이성준 기자 (ssjj515@skku.edu)

소설 <블루 혹은 블루>에서 두 명의 도플갱어는 서로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비극을 겪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반면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나오는 두 도플갱어,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는 이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죠. 두 작품에 나온 도플갱어들이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을 비교해 그들과 우리에게 ‘자아’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영화에서는 베로니카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우연히 접했던 가시적인 모든 일이 또 다른 그녀인 베로니끄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베로니끄는 베로니카가 겪었던 통증을 직감적으로 피하고, 그녀가 겪었던 삶의 흔적 등을 본능적으로 느끼죠. 심지어  베로니카가 노래를 부르던 도중 심장마비로 죽었던 것을 마치 알기라도 하듯, 자신이 좋아하던 성악을 갑작스럽게 그만두며 죽음을 모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적으로만 영향을 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베로니카가 죽는 순간, ‘왠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라며 자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기도 합니다. 또한 베로니카의 흔적을 발견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베로니끄의 모습에서, 그녀가 내적으로 베로니카와는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거죠.

이처럼 도플갱어들에게도 정체성은 자신만의 가치를 드러내는 하나의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도플갱어끼리는 이름, 얼굴, 과거, 기억이 같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오히려 또 다른 나를 통해 자신만의 존재를 감각해 나가고, 자아를 형성합니다. 자기와 똑같은 그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결국 자기뿐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도플갱어가 아닌 우리는 어떤가요. 분명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하나뿐인데도 불구하고 정체성에 불순물이 껴있지 않은지요. 우리는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따라하기 바쁘며, 패션잡지를 들춰보고 흉내 내기도, 남들이 선호하는 것을 그대로 좋아하기도 하며 주체성을 잃어가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은 도플갱어의 삶보다 나을 바가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를 되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듯, 우리도 우리의 자아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