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농의 샘』 리뷰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인간이 자연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풍수지리 △대지모 △음양오행 등의 사상이 지향하는 바가 그렇듯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앞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대지>도 이러한 사상이 녹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의 대상으로만 봤을까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대지모 사상은 동양에 한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삶에서 가장 근원이 되는 원형(archetype)입니다. 즉, 우리 눈에 보이는 동서양과의 차이 등 현상을 넘어 정신에서 작용하는 내적 이미지라는 것이죠.

프랑스의 자존심과 같은 영화 <마농의 샘>은 이같이 위대한 ‘자연의 힘’,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대해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화의 전개가 땅과 물 등 자연과 인간이 주고받는 영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경작하는 192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 중 서로 이웃해있는 땅을 경작하는 카모완 가(家)와 수베랑 가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자신의 땅에는 물이 없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수베랑 가의 위골랭은 카모완 가의 토지에 솟아나는 샘물을 막아버리고, 이때부터 토지와 샘을 배경으로 한 갈등이 전개됩니다.

우선 잘못 배분된 땅으로 인한 집요한 원한과 갈등이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전면에 등장하게 되지요. 샘이 막혀버린 땅은 이윽고 카모완 가의 후손 쟝이 경작하게 되는데, 이를 위골랭과 그의 조카 빠뻬는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면서 도시 출신이면서 곱추인 쟝이 시골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으며 땅을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는 쟝을 두고 배아파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시, 자연은 쟝의 농사에 불행을 안겨다 줍니다. 샘물이 막힌 그의 토지는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과 비가 오지 않는 장구한 가뭄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땅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쟝은 정성을 다해 농작물을 돌보지만 무심한 땅은 말라가기만 하지요. 이에 결국 샘물을 찾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암반을 폭파하는 과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토지를 둘러싼 인간들의 갈등이 펼쳐지는 동안 자연은 그저 침묵할 뿐입니다.

이브 몽땅 등 프랑스의 국민 배우진이 명연기를 선보였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농촌 지방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어 영상미 또한 뛰어납니다. 과거에 프로방스는 실제로 고질적인 물 부족 현상을 겪어 운하를 건설하기도 했다는 배경을 안다면 영화 이해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잘 몰랐던 서양의 자연관, <마농의 샘>을 통해 동양의 토지관과는 또 다른 프로방스 토지의 감촉을 느껴보시지 않을래요? 혹시 모르죠. 다른 점 보다는 동서양을 뛰어넘는 인류의 공통적 지혜를 느끼게 될 지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