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경영07)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구는 둥글지만 모든 나라가 원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지명만 들어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빈국들이 많다. 그 나라가 처한 자연환경의 영향 탓에 충분히 먹고 살 거리들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도 한 이유이겠으나 그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살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세계에 기아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 뭐랄까. 그냥 욱 하고 욕이 튀어나올 것 같다. 자연의 섭리로 한정된 지구의 인간 수를 조절하기 위해 기아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 그들이 기아로 굶주리고 있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자녀들을 본다면 과연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세계의 이런 가난과 굶주림과 말도 안 되는 원리 앞에 내가 이렇게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이야기가 내 삶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저 분노라도 함으로써 내 자신의 양심을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른단 말이다.

“할아버지! 그거 내 껀데 왜 가져가!” 출근시간이지만 한적한 3호선의 종점(나는 지금 인턴을 하고 있어서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다). 언제나 봐왔던 할아버지는 선반위의 신문지를 수거하고 몇몇 새로운 얼굴들이 또 바쁘게 신문을 수거하고 있다. 그러다 웬 아주머니가 뛰어가며 내뱉은 말이다. 자신이 모아둔 신문지를 할아버지가 모른 체 가져가서 생긴 일이리라. 순간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다. 앙상한 팔다리에 살짝 밀기만 하여도 넘어져버릴 것 같은데 그분은 넘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아주머니를 붙잡고 늘어졌다. 살기 위해서였으리라. 신문의 양은 엄청나도 무게를 달아 값을 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양이라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경쟁자가 생긴 셈이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 밖에. 하지만 아주머니 역시 살기 위해 나왔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서서 그들의 몸싸움을 막을 수도 없었고, 그들을 위해 내 손에 쥐어있던 신문을 줄 수도 없었다. 그저 언제 큰 싸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조마조마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삶들이 너무 많다. 세계에 힘들고 어려운 자들 많지만 내가 국외를 꿈꾸지 않고 국내 사역을 꿈꾸는 이유도 그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도 힘들고 가난한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린 시절. 길가에서 상추나 채소를 팔던 할머니들을 보면서 내가 자라면 그분들 상추 한 번에 다 사서 편하게 살게 해드려야지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는 내가 그 한 분의 하루 삶을 돕는다고 세상이 행복하게 변하지 않는 것을 안다.

선의만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을 도울 용기는 없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넘치는 하늘 사랑을 받았음에도 움켜쥐려고만 하지 베풀고 나누려 하지 않는다. 흘러넘치는 것들을 죽기 살기로 끌어 모으고 있는 것 같다. 글의 마무리가 지어지지 않는다. 입으로는 시인하되 행동으로는 부인하고 있는 나의 가증스러움 때문이리라.